이동근의 문(文)·화(畵)스캔들<9> 오목대와 이목대
이동근의 문(文)·화(畵)스캔들<9> 오목대와 이목대
  • 김상기 기자
  • 승인 2016.11.0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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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바람 불어오니 구름이 날리는구나.
천하에 위세를 떨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도다.
어찌하면 날랜 장사를 얻어 사방을 지키게 할꼬.

유방이 승승장구하며 한나라 건국의 대업을 이룰 즈음, 고향에서 잔치를 베풀고 흥에 취해 불렀다는 대풍가(大風歌).

고려말(1380년) 남원 황산에서 왜구에 대승을 거둔 이성계도 전주 한옥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오목대에서 잔치를 베푼다. 전주 이씨 종친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성계는 이 대풍가를 읊는다. 한고조 유방처럼 자신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야심이다.

그로부터 520년이 지난 1900년, 고종이 친히 ‘태조가 머무른 장소’라 쓴 비석을 세운다. 쇠락하는 조선의 정체성을 이곳에서 찾은 것이다.

 오목대에서 왕복 6차선 도로를 건너면 이목대가 나온다. 이성계의 4대조 이안사가 나고 자란 곳이다. 오목대와 이목대는 하나의 산줄기로 이어져 있었다. 그런 걸 일제강점기 철로를 깐다며 둘로 나눴고, 지금은 큰 도로까지 뚫렸다. 심보가 고약하다.

이동근의 문화스캔들 아홉 번째 이야기는 오목대와 이목대다. 화가는 이 고약한 곳을 오가며 스케치를 했다. 오목대와 이목대를 연결하고픈 마음이었을까. 도로 위에 놓인 다리도 스케치북에 자리를 잡았다. 상상력을 덧대 둘을 하나처럼 그린 작품이 후일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삼삼오오 모인 학생들이 화가의 작업에 관심을 보였다. 화가도 반가웠던 것일까. 말도 받아주고, 한복 입은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역사적 맥락이 배제되면 지금의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온고지신이라 했던가. 문화스캔들이 보이는 것만 담는 단순작업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된다.

김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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