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머리를 갈겨주라!
그의 머리를 갈겨주라!
  • 이동희
  • 승인 2016.11.06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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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법학에 관해서는 잘 모르지만, 범죄 행위를 저질러도 형사소추를 당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정도는 안다. 14세 미만은 형사 미성년자로 보아 형사 소추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 한다”(헌법 제84조)는 것 등이다. 14세 미만은 사리 분별능력이 없어서 범죄에 대한 형사상 죄를 부과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에는 미성년자들에 의한 끔찍한 범죄가 빈발하여 ‘형사 미성년자’의 나이를 더 낮추자는 의견도 있는 모양이다.

현직 대통령에 대하여 형사소추를 면제하는 것은 국가 원수로서 지니게 될 막중한 책임에 비례하여 형사상의 범죄를 구실로 선거에 의해 선출된 국가 지도자의 위격을 함부로 침해하지 못하게 하여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게 하려는 뜻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미성년자가 저지른 범죄를 형벌의 대상으로 삼으려면 미성년(범죄)자의 말이 범죄 구성 요건에 맞아야 할 터인데, 우리 속담에 “아이 말 듣고 배 딴다”는 말이 있듯이, 정신적으로 미숙하여 일관성도 없고, 어휘에 대한 명확한 개념도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말’이다. ‘말은 곧 사람이다.’ 언어철학자 헤루데루(Herder)는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 이성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이성은 곧 사람됨의 핵심이 아닌가? 아직 이성적 언어를 형성하지 못한 [비록 범죄행위를 한]아이일지라도 이들을 대상으로 죄를 묻고, 벌을 준다는 것은 마치 ‘삼척동자에게 노장철학을 강론하는 격’으로, 웃지 못할 희극이 될 것이다. 그래서 미성년자를 형사소추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신체적으로 미성숙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성적인 언어 세계를 구축하지 못한 것이 진짜 이유가 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이 설사 범죄를 저질렀다 할지라도 어떻게 성년으로 취급하여 죄를 물을 수 있겠는가?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하는 것을 정신을 차리고 나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걸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셔야 할 거로 생각합니다.” 국내 내로라하는 석학들, 대학 교수들, 언론사 논객들 그리고 칼럼리스트들이 그 뜻을 아무리 새겨 봐도 이해할 수 없다며, 자주 인용하는 문장이다.

위에 인용한 문장(아니, 비문)은 소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을 향한 발언요지다. 이런 비문(非文)은 당연히 아직 사리를 분별할 수 없는 미성년자들이나 구사할 법한 말투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으며, 내가 하는 말의 내용이 무엇인지, 내가 하는 말을 듣는 사람이 누구이며, 이 말이 미칠 영향은 무엇인지 등에 대하여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마치 어린 아이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형국의 언어형태다. 그것도 논리나 형식은 고사하고, 말하는 이의 생각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유치찬란한 소리의 나열일 뿐이다.

하긴 대국민 사과랍시고 발표한 문장의 내용이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거짓으로 드러난 말을 하는 사람을, 설사 범죄를 저질렀다고 할지라도 어떻게 죄를 묻고 벌을 줄 수 있겠는가? 그래서 현직 대통령을 형사 소추할 수 없는 것은 헌법 제84조 때문이 아니라, 그 언어능력이 미성숙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짐작하며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독일 현대시에 획기적 파열음을 낸 극작가이자 시인 브레히트(Bertolt Brecht.1898~1956)는 그의 시「인간 노력의 불충족에 관한 노래」에서 이렇게 썼다. “인간이란 도대체 선량하지 못하니까/ 그의 머리를 갈겨 주어라./ 네가 그의 머리를 갈겨 주면/ 그는 혹시 선량해 질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기에는/ 인간이 선량해도 모자라기 마련./ 그러므로 너희들은 그의 머리를/ 서슴지 말고 갈겨 주어라.”(전체4연 중 끝연)

이 시는 브레히트의 서사극『서푼짜리 오페라』에 나오는 노래다. 고답한 시형식, 천박한 언어를 구사하여 도덕적 기대와 비속한 진술의 부조화를 표현했다. 사회에 만연한 은폐된 부패상을 공공연히 비판하며, 사회의 외형적 질서가 실은 ‘강도의 질서’임을 풍자하고 있다.

20세기 초 세계에 만연한 ‘강도의 질서’가 21세기 우리나라의 모습과 완벽하게 오버랩 되는 비참한 심정이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구사하는 언어 실태는 참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대통령을 탄핵하자거나, 하야하라고 외치기도 아깝다. 아마도 모르면 몰라도 박대통령은 ‘탄핵과 하야’가 지니는 말뜻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상심한 국민들이 해야 할 일은 ‘그의 머리를 서슴지 말고 갈겨주는’ 일뿐이라니, 절망이 깊다.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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