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적 사유가 남다른 직관적 이미지
초월적 사유가 남다른 직관적 이미지
  • 김동수
  • 승인 2016.11.03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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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17. 최정아(崔貞娥:1949 -)

 전북 남원에서 출생, 본명 최복순,. 2002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예에 시 당선, 2004년 『시선』으로 등단. 전주문학상, 온글문학상, 중산문학상, 제1회 신석정 촛불문학상을 받고 시집 『밤에도 강물은 흐른다』, 『봄날의 한 호흡』을 발간하면서 시와 더불어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간추려 새로운 사유의 세계를 끌어내는 직관적 서정의 시인이다.

시골집 앞마당
어미 닭 몇 마리 땅을 헤쳐
봄을 줍는다

개와 닭 사이 봄볕이
팽팽하다
나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해
덮어두었던 책을
열심히 넘겨보는 어미닭
행간 가득 실린 잠언들이
풀꽃으로 환생한다
봄볕의 두 손이 경전이듯
성스럽다

모진 칼바람에도 붉어진 벼슬
내가 평생을 두고 흉내내지 못할
맨드라미꽃보다 붉은 화관
봄볕이 탄다.

-「봄날 오후」 전문

풍경을 밖으로 끌어내는 능력, 물활론적 사유가 가히 경이롭다. ‘개’와 ‘어미닭’ 그리고 하늘에서 내리는 ‘봄볕’을 동시에 읽어 내리는 우주론적 통찰의 세계, 空과 色, 형이하와 형이상을 넘나드는 초월적 사유가 봄날의 햇살처럼 팽팽하게 탄력을 유지하고 있다.

어항 속 물고기들
알록달록 몸으로 글씨를 쓴다
모음과 자음 이리저리 맞추며 쉼 없이 써내려 간다
구겨진 파지들이 뽀글뽀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중략-

흩어져도
또 백지를 꺼내든다

-「파지」 일부

시종일관 시적 탄력과 긴장감이 여전히 팽팽하다. 뽀글뽀글 물거품이 되어도 다시 꼬리로 밑줄을 그어가며 글을 쓴 물고기들’을 바라보면서, 밤새 시에 매달려, 아니 生에 매달려 파지를 소모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문득 발견한다. 그러면서 그는 되뇌인다. ‘글을 쓴다는 것도 / 세상을 향해 파지를 던지는 일’이라며 ‘흩어져도/ 또 백지를 꺼내든’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밤하늘의 별들도 때론
지상의 저녁을 즐기고 싶어
갈라놓은 수박에 총총 박혀 깜박이고 있다
누구도 뿌리와 잎의 근원이 씨앗임을
의심해본 적 없을 것이다

칼끝만 살짝 댔을 뿐인데
끈적끈적한 핏물
쩌-억, 기억 안쪽까지 환하다

-중략-

내 손톱에선 자꾸만 반달이 떠올랐다.
식구들 둘러앉은 저녁
수박 한 조각 입에 넣어보면
불경하게도 내가 엄마 씨앗이었던 것을

단맛에 섬광처럼 녹아드는 핏물
엄마 젖이 이러했을까
뱉어낸 씨앗 몇 점
아이들은 풋것처럼 쑥쑥 자라고 있다

-「발아」 일부

제1회 <신석정 촛불문학상> 수상작이다. 심사평에서 ‘감각적인 형상화와 언어의 균형감, <발아>는 수박씨라는 평이한 소재를 감각적으로 형상화한 점이 장점이었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시의 표면에 드러난 언어가 균형감을 잃지 않고 있어 충분히 안정되어 있는 점도 호감이 갔다’(신경림 외)고 한다. (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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