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단임제, 바뀌어야 하나?
대통령 단임제, 바뀌어야 하나?
  • 허민홍
  • 승인 2016.11.0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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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김종필 전 총리의 부인 박영옥 여사가 별세했다. 김 전 총리는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병석에 앉은 부인 박 여사를 끝까지 극진히 간호했다고 한다. 박 여사가 숨을 거두는 바로 그 순간까지 사랑의 언어를 전달하며 키스했다고 한다. 로맨티스트다. 그러면서 눈물로 부인을 떠나보냈다. 그런 그가 부인의 장례식에 조문 온 기자들에게 한국정치에 대해 한마디 했다. 꼭 집어 대통령 임기에 대해서였다. ‘대통령에게 5년 단임은 너무 짧다.’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었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2014년 10월)에 따르면 국민의 58%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원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비율은 해가 갈수록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현 5년 단임제가 3명의 정치인들이(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돌아가면서’ 대통령을 하기 위해 고안된 법이기 때문에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87년 개헌 이후, 이미 30여 년간 시행해 보았으니 미국 등 선진국처럼 중임제로 바꿀 시기가 되었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주요 언론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중임제’로 바뀌어야 한다는데 한목소리를 낸다. 과연, 대통령 5년 단임제는 반드시 바뀌어야만 하는 걸까.

4년 중임제를 찬성하는 이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정책의 일관성을 위해서’란 명분이다. 5년 단임으로는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너무 짧고, 설령 정책을 시행한다 해도 차기정권에서 바뀌는 경우가 많아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국가 재정도 낭비고, 시간도 낭비 아니냐는 지적이다. 하지만 ‘정책의 일관성’을 위한다는 것은 8년 동안 집권할 것을 이미 전제한 말이다. 4년 집권하고 물러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이는 임기가 더 짧아지는 셈이다.

둘째로, 4년 중임제의 ‘이상적인 시나리오’를 가정해보자. 첫 임기는 4년간 국가운영계획을 구성 및 완료하고 국무총리 등 고위직을 선별 임명하여 기반을 잡는다. 정책도 긴 호흡으로 추진한다. 그리고 다음 4년간 기초를 닦아놓은 토대에 더욱 효율적으로 과업을 처리하면서 나라를 번영시키는 것이겠다. 그야말로 쉽고 이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모든 일에는 ‘최악’이 도사리고 있기 마련이다. 가뜩이나 임기 말 레임덕과 친인척들의 뇌물수수혐의로 조용할 날이 없는 현 대통령제가 중임제가 되면 어떨까.

‘중임’을 하고자 첫 4년간은 각종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들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 본래 중임제의 도입취지는 첫 4년간 임기를 통해 국정수행능력이 떨어지면 낙선을 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포퓰리즘 위주의 정책들과 복지에 집중 투자해서 필부들의 호감을 산다면 낙선을 막을 길이 없다. ‘표리부동’한 대통령은 중임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정책의 일관성이 필요하다는 주장만을 놓고 생각하기엔 중임제의 부작용 또한 커 보인다.

정책의 일관성은 꼭 대통령제를 개정해야만 이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바뀌어도 각 정당이 노력하여 지켜낼 수 있다. 물론, 현직 대통령의 ‘제왕적 권위’ 앞에선 불가능할 법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 때, 야당이었던 새누리당의 정책을 수용하고 시행한 전례가 있고, 노무현 정부 때 입안된 정책을 이명박 정부 들어와 계속 유지해온 것도 더러 있다.

흐지부지하며 4년은 포퓰리즘에, 남은 4년은 레임덕에 빠져 대통령직을 수행하기보단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5년간 단임을 하도록 한 것도 나름 성공적인 모델이란 생각이 든다. 개정을 놓고 축구 경기로 치면 ‘룰’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룰’만 비난하고 나설 게 아니다. ‘룰’이 문제가 아니라, 이제껏 그것을 충실히 지키지 못한 ‘사람’이 항상 문제였다.

인생에 기회는 딱 한 번 일 때가 많다. 김 전 총리는 고 박 여사에게 청혼할 때 로버트 브라우닝의 ‘한 번, 단 한 번’이란 시를 낭송했다고 한다. 참 로맨틱하다. 그렇다. 인생엔 단 한 번이어서 아름다운 적이 많다. 대통령직이 바로 그렇다.

허민홍 (사)전북사회경제포럼 협동조합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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