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론과 집단사고
당론과 집단사고
  • 이용호
  • 승인 2016.10.3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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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지방 국감을 가기 위해 한강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당 지도부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것 어떻게 할 거예요? 혼자만 서명을 하지 않았던데….”

“글쎄요, 방향은 맞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그것을 야 3당이 공동 제출하는 것이 전략상 옳은지는 모르겠습니다”

“혼자만 서명을 하지 않으면 당론채택이 안됩니다. 일단 서명하세요. 혼자만 서명하지 않았다가는 관련 단체에서 나중에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나는 알았다고 했다. 도장을 찍어도 좋다고 했다. 야 3당은 곧이어 이것을 공동 명의로 제출했다. 그것이 어떤 내용인지는 여기서 밝히지 않겠다.

당론은 언제나 좋은가? 그 당론 때문에 여야가 충돌하는 것이다. 그 사이 수많은 민생법안은 서랍 속에서 잠을 자야 한다.

당론은 집단사고의 결과물이다. 집단사고는 위험하다. 어쩌면 당론은 국회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인지도 모른다.

1961년 4월. 미국은 쿠바 망명자 1,400여명을 앞세워 쿠바를 침공했다. 뒤에서 CIA가 이들을 지원했다. 그러나 3일 만에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무려 1천여 명이 생포되는 참담한 패배를 맞았다. 이것이 미국의 피그스 만 침공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침공을 결정할 당시 참모 가운데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침공에 반대의견을 내지 않았다. 참모들이 서로 친밀한 나머지 상대의견에 반하는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체면을 생각해서 말이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닌가. 이런 집단사고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졌다.

각 당의 당론이라는 것이 결정되는 과정을 보면 할 말이 많다.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채택한 국민의당 당론이 ‘개원이 될 때까지 세비를 반납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소속 의원들의 충분한 논의도 없이 당론으로 채택되는 것을 보고 불편했다. 어느 날 최고 당직자가 그런 얘기를 꺼내기에 그것은 인기 영합적이라며 반대했다. 그럼에도, 회의에서는 당론으로 채택되었다. 세비 반납에 반대하면 세비나 탐내는 옹졸한 사람으로 비칠까 우려해 잠자코 있었던 의원들이 많았다는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의원들은 대체로 지도부의 의견에 따라준다. 못마땅한 면이 있더라도 지도부의 위신과 체면을 생각해 참고, 때로는 혼자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이 부담스러워 미소로 대신하기도 한다. 의원총회도 동창회 수준과 별반 차이가 없다. 때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고 합리적인 목소리는 소음에 묻히기도 한다. 그러나 한번 당론으로 결정되면, 그 사안은 개개인 의원들의 손을 떠난다. 바꿔먹든 구워먹든 지도부 손으로 넘어간다. 여야 지도부가 알아서 ‘딜’을 하고 의원들은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신세가 된다. 국민이 화를 내는 것은 이런 풍경 때문이다.

국회의원 개개인은 독립적인 헌법기관이다. 그들은 자신 뒤에 최소 14만 명 이상의 주민이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현안에 침묵을 지키는 것은 정치인의 미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가능한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 주민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집단사고의 위험을 줄이려면 반대 목소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진정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집단사고의 위험성을 낮출 뿐 아니라 오히려 존중받는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은 당당하게 속마음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용호<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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