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장벽을 넘어서야 소통이 될까”
“지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장벽을 넘어서야 소통이 될까”
  • 권영후
  • 승인 2016.10.2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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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에서는 침엽수와 활엽수가 주인 노릇을 한다. 맨땅이 숲으로 변하는 천이과정을 살펴보면 처음 이끼 같은 지의류가 나타나고, 초본류가 자라면서 관목 군락으로 변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햇빛이 많이 필요한 침엽수가 점유하는 양수림으로 이행한다. 다음은 혼합림을 거쳐 활엽수처럼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음수림이 형성된다. 음수림 단계에서 구성 수종이나 양이 크게 변하지 않는 안정된 상태가 극상림이다.

이 과정에서 주목되는 점은 햇빛을 충분히 받고 자란 양수림이 결국에는 약한 빛에서 생존하는 음수림에게 자리를 내준다는 사실이다. 침엽수가 차지한 숲 속에서 식물은 잘 자라지 못한다. 하지만 양수림 사이에 어렵게 비집고 들어간 활엽수가 약한 빛에서 광합성을 강화하면서 키를 키워 그늘을 만들면 침엽수는 감소하게 된다. 결국 활엽수가 차지한 숲은 다양한 식물들이 경쟁하면서 기후와 토질이 가장 적합하고 균형을 이루는 극상림이 된다.

숲의 변화 흐름에서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난제를 풀 아리아드네의 실을 찾을 수 있다. 침엽수인 소나무 숲은 빛을 독점하고 다른 종을 배제한다. 반면 활엽수 숲에는 다양한 식물이 경쟁하며 자란다. 아주 작은 나무도 빛을 받을 공평한 기회가 보장된 최상의 소통 상태를 보여준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보여준 청와대의 자세는 소통이 꽉 막힌 양수림과 닮은꼴이다. 유체이탈화법과 사건을 축소 회피하고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는 태도는 불통의 전형적인 행태다. 문제를 직시하고 투명하게 설득하지 못하면 신뢰는 추락하고 의혹은 깊어질 뿐이다. 확실한 증거가 나온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국한해서 사과했지만 무늬만 사과로 보였다. 다른 비리 의혹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불통의 모습은 여전하다. 일개 민간인이 상상 이상으로 국정을 농단한 것은 황당한 일이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의혹은 국정운영 체계를 붕괴시키고, 탄핵론이 나올 만큼 국민의 여론은 악화하고 있다. 업무수행이 불가능한 대통령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런 와중에 개헌 의제를 던졌다. 불통 상황이 지속한다면 히치콕의 서스펜스 영화 초반에 매우 중요한 것처럼 등장했다가 엔딩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드러나는 속임수 같은 ‘맥거핀’이 될지도 모른다.

소통없는 정치 리더십이 지배하면 국가 시스템은 붕괴한다. 2016년 OECD 보고서에서 우리 정부의 신뢰도는 35개국 중 29위로 나타났다. 정부가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집단의 출연으로 재단을 만들어 선의의 목적으로 사용한다지만 이를 누가 믿겠는가. 의혹의 중심에 있는 미르와 K스포츠재단은 물론이고 청년희망재단이나 지능정보기술연구원이 무엇을 하는지 투명하게 공개된 적은 거의 없다. 봉건시대가 아닌 민주사회에서 태생적으로 의혹이 쌓일 수밖에 없는 불통은 악당을 출현시켜 국가적으로 불행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최순실 게이트’는 몇몇 기성 언론의 끈질긴 탐사보도로 밝혀냈지만, 디지털미디어가 합세하여 민심을 폭발시켰다. 디지털 시대의 특성은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적 소통에 있다. 소수 미디어가 독점하는 거시적 소통에서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미시적 소통으로 권력의 추가 넘어갔다. 대중은 온라인으로 매일 국정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집단적 행동을 표출한다. 디지털 환경이 극단으로 나누어 혐오하고 싸우기 위한 욕망의 배설구로 악용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는 명제가 보편성을 갖게 되었다.

소통 커뮤니케이션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면서 시민 주권을 재구조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추세에 둔감한 리더쉽은 정치공학적 술수에 유능할지 몰라도 경제 활성화, 안보 위기, 저출산 고령화, 불평등 등 산적한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무능하다.

모든 정치적 갈등과 해결이 어려운 과제의 중심에는 소통이 있다. 정부가 소통 능력을 잃으면 국민이 불행해진다. 소통을 왜곡하고 오염시키는 시도야말로 비참한 결과를 야기할 뿐이다. 극상림처럼 상호 공감과 협력, 투명성에 기반한 소통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는 유발 하리라 적이 딱 들어맞는 현장을 목도하고 있다. 밥 딜런의 노래를 빌려 “지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장벽을 넘어서야 소통이 될까”.

권영후<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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