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이 천심이다
농심이 천심이다
  • 이춘석
  • 승인 2016.10.23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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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무자비하게 쏘아 댄 물대포에 무고한 농민이 아스팔트 바닥 위로 처참히 쓰러졌다. 농부의 땀으로 한여름의 뙤약볕과 강풍을 견디며 알곡을 맺어 온 황금빛 나락들도 들판 위로 무참히 쓰러졌다. 밤낮으로 자식같이 살피던 나락들을 갈아엎고 나락을 수확해야 할 콤바인은 트럭에 실은 채 농민들은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은 내 손으로 갈아엎은 나락들과 쌀값 대책을 요구하다 목숨을 잃은 故 백남기 형제의 얼굴이 번갈아가며 떠올라 가슴팍에 곡괭이질을 하며 절망의 벽을 오르는 심정이었을 것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17만 원대 하던 쌀값을 21만 원대로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러나 쌀값은 오히려 20년 전보다도 더 낮은 13만 원대로 추락했다. 그나마 실제 농민들 손에 쥐어지는 것은 10만원도 채 안 된다. 일 년 내내 흘린 땀의 대가는커녕 생산비조차도 안 되는 돈이다.

정부는 쌀 소비가 줄고 풍년이 든 것이 원인이라고 하지만, 농민들은 물론 전문가들조차 정부의 재고 관리 실패가 초래한 참사라고 입을 모은다. 200만 톤에 달하는 재고량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연간 40만 톤 이상의 저가 쌀을 수입하고 있다. 심지어 만성적인 식량 부족으로 기아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조차 중단하면서 연간 30만~40만 톤의 재고가 그대로 누적되고 있다.

문제는 쌀값 폭락의 피해가 영세소농들에게 갈수록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 농업을 이끌고 있는 영세소농들의 월 평균 소득은 100만원도 채 안 된다. 지금 이대로 간다면 우리 농업은 고사하고 말 것이다. 

혹자는 무역이 세계화되면서 얼마든지 값싼 수입농산물이 넘쳐나는데 식량을 주권문제로 귀착시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한다. 또 후진적인 농업을 방치하는 것보다 대기업에게 맡겨 경쟁력을 키우는 게 낫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값싼 경제논리야말로 오히려 더 시대착오적이 아닐 수 없다.

유럽연합만 하더라도 전체예산의 40% 내외를 농업정책에 할당하여 직불금을 통해 농가소득을 지지하고 농촌개발을 위한 정책에 사용하고 있다. 식량주권을 위해 농업과 농민들을 지키는 것은 마땅한 사회적 비용이라는 합의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농업보조금 수준은 2013년 기준으로 OECD 평균의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이나마도 대농이나 법인들 중심으로만 보조사업이 집중되고 있어 전체 농민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영세소농들은 여기에서조차도 소외되고 있다. 농촌의 빈부격차가 더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농업정책을 하루빨리 중소농 및 영세농 중심으로 전환하고, 농업정책 예산 자체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농업이 이대로 고사하도록 놔두는 것은 우리 목줄을 스스로 죄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울러 2011년에 이미 약속한 바 있던 자동적 시장격리제를 즉각 도입하고, 수매물량 대폭 확대와 우선지급금 인상을 통해 쌀값의 최저가격을 지지해야 한다. 재고관리 역시 대북지원 재개와 사회복지 수요 확대 등을 통해 적극적 소비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역사 속에 많은 임금들이 치수사업의 실패로 왕좌에서 내려왔다. 홍수나 가뭄이 모두 임금의 탓 일리는 없겠지만, 농심을 얻지 못한 임금은 하늘도 버린다는 백성들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농심은 천심이다.

지금 농민들의 가슴은 들판의 나락들과 함께 속절없이 타들어 가고 있다. 쌀값 좀 지켜달라고 호소하던 농민이 공권력의 폭압으로 병상에서 사경을 헤맬 때, 송로버섯에 캐비어가 오른 호화로운 오찬을 즐기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는 궁궐 안 소식에 국민들도 분개했다. 농심을 외면한 임금의 말로는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었다는 것을 박근혜 정부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춘석 /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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