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하는 길 ‘예자길’
소통하는 길 ‘예자길’
  • 송영준
  • 승인 2016.10.20 18: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나라 지도를 보면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연결해주는 국토의 대동맥인 고속도로와 간선국도, 철도가 전국의 도시를 거미줄처럼 덮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도를 확대해서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면 구불구불해서 더욱 정감 있는 길이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고 산을 품고 들판을 거쳐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길’을 정의할 때 두 지점 간에 사람과 물자를 이동시키기 위하여 합리적으로 설치한 일정한 너비의 공간을 말한다.

먼 옛날 사람들이 수렵활동을 하거나 물을 길어가기 위해서 걷기 좋은 곳을 여러 차례 오가는 사이에 풀이 밟히고 다져져서 자연스럽게 오솔길이 만들어졌다. 길이 생겨나면서 사는 것이 편해졌을 뿐만 아니라 비로소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고 문화를 전파하는 등 상호간에 교류할 수 있는 통로 역할도 하게 되었다. 그동안 교통이 불편해서 왕래가 힘들었던 오지 낙도에 항공편과 뱃길 또는 교량이라도 개통되면 하늘길, 바닷길이 뚫렸다고 하면서 지금도 성대한 행사를 개최하는 것도 세상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이 편해진 것을 축하하는 이유에서 일 것이다.

길은 문물교류뿐만 아니라 삶을 윤택하게 해주고 사람의 수명을 늘려주는 역할도 해서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걸어서 행복해져라, 걸어서 건강해져라…….”라고 하면서 오래 사는 최선의 방법은 끊임없이 그리고 목적을 갖고 걷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자연 그대로 이거나 정성스럽게 단장해 놓은 길을 걸으면서 여유롭게 주변 경관을 감상할 수도 있고 세파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전국의 산과 숲, 도시와 마을에는 올레길, 둘레길, 자락길 등이 조성되어 있다. 전북지역 역시 우리 고장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뿐 아니라 관광객 유치를 위해 다양한 도보 여행길이 늘어나고 있다. 부안군에서는 해마다 ‘마실길 축제’가 성대하게 열리고 있으며 한국적 슬로시티를 지향하는 전주시도 시민뿐 아니라 전주를 찾는 방문객들이 편하게 걸으면서 느끼게 될 좋은 이미지와 추억거리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첫 마중길’ 공사가 한창이니 이제 길은 단순히 사람과 물자가 이동할 때 사용하는 공간을 넘어 삶의 질을 높여주는 문화, 축제, 관광의 도구로 확대되고 있다.

지적 분야에 종사했던 원로들은 농촌지역, 산촌지역의 도로 폭이 6자 정도(약 2m)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서 ‘예자길’로 불렀다고 한다. 이렇게 지게를 지거나 수레가 겨우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좁고 구불구불했던 예자길이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일환이었던 마을진입로와 마을 안길을 넓히기 사업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논두렁, 밭두렁을 길로 삼았던 것을 경운기가 지나다닐 정도의 넓은 농로로 만들 수 있었던 것 역시 많은 토지소유주들이 기꺼이 자기 땅을 도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희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지적측량을 통해서 도로로 희사한 땅에 대해서 지적도와 토지대장 등 지적공부를 제때 정리했어야 함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아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도로에 편입된 땅의 지적정리가 안돼서 분쟁이 일어나고 수십 년간 공용도로로 사용했던 골목길을 두고 먼 길로 돌아다녀야 하는 불편뿐 아니라 귀농, 귀촌으로 제2의 삶을 계획했던 사람들까지 도로 문제로 낭패를 보기도 한다. 하루빨리 도로에 대한 지적정리를 완료해서 이런 불편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옛날의 길은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생겨난 오솔길과 같은 자연발생적인 길이었고 소통하는 길이었다면, 지금은 빨리 가기 위해 산허리를 자르거나 터널, 교량으로 연결되는 직선 위주의 큰 길이 만들어지고 있어 대형사고가 종종 발생한다. 일상에 쫓기는 듯 바쁘게 사는 세상이지만 서둘러 가려 하지 않는 구불구불한 길이 더 정감이 가듯 사람들이 편안하게 다닐 수 있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길이 많았으면 좋겠다. ‘예자길’이 신작로가 되었듯이 조금씩 양보하고 주변과 교류하면서 나누고 베푸는 길, 삶의 애환을 느낄 수 있는 길, 소통하는 마음을 담은 길을 만드는 게 참다운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송영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