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조건, 지방분권
선택의 조건, 지방분권
  • 이해숙
  • 승인 2016.10.20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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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의 역사도 제 집안의 역사를 정당화하기 위한 방식으로 정리해서 국민을 속이기도 하고, 윤봉길 의사의 동상은 쓰러뜨려도 제 아비의 동상은 마땅히 세워야 하고, 국가의 재산을 제 재산이나 되는 양 법도 절차도 무시하고 써대고, 소통해야 할 대상이 국회도 아니고 국민은 더욱 아닌, 문고리권력 십상시들인 나라.

권력의 주변에 있으면 권력자와 같은 모습으로 무한 복제되는 좀비 생산시스템.

이것이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될 때 나타나는 폐해인 것이며, 우리는 두 명의 대통령을 통해 너무도 생생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대가를 지금 무너지는 지방의 모습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우리 전라북도에서 말이다.

젊은이들이 모두 도심으로 떠나고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끊겨버린 늙은 사회.

사람들이 사라지고, 가게가 사라지고, 경로당을 가야만 사람의 기척을 느낄 수 있는 시골마을은 누구나 떠날 채비를 하고 살아가고 있다.

논밭에는 기계들만 보이고, 꾸부정한 노인들이 근근한 그들의 삶을 이어가고 있을 뿐, 어느 한 곳에서도 미래를 발견하기 어려운 황폐함만이 나뒹굴고 있다.

최고권력자와 그들의 무리가 배부른 노래를 부르는 사이에, 지역은 거친 모랫바람만 날리고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극명한 차이를 목도해야 하는가?

문제의 근본원인은 ‘집중된 권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청와대로의 과도한 권력의 집중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언론과 기업들이 공생관계를 기본 틀로 하여 권력을 집중할 구조를 강화하고 있고, 파워엘리트집단과 재벌집단이 유착을 통해 국민의 이해는 외면당하고, 권력집단의 이해가 국가의 이해인 양 해석되고 마치 정부가 아니라 거대한 이익집단을 운영하듯 국가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인 것이다.

이러한 먹이사슬 구조에서 국민은 더 이상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그 이익집단의 이익을 제공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저당 잡힌 채, 시름시름 앓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는 일이다. 권력 분산은 국민주권을 강화하는 것과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형태로 이뤄져야 하고, 국민이 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정치체제를 도입하는 것과 국민이 삶을 살아가는 지역이 자기결정권을 갖게 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

이것이 박원순 서울시장이 제시한 지방분권형 개헌 제안이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권한을 행사하는 것과 국민이 지역에서 주권자로서 권한을 행사하고 이 권한의 일부를 지방정부로 위임하는 것을 골자로 한 지방분권 개헌인 것이다.

지방분권 개헌을 통해 국민이 나라의 주인으로 우뚝 설 수 있고, 지역에서 주권자로서의 역할을 다할 때 우리는 비로소 미래를 꿈꿀 수 있다. 따라서 지방분권 개헌은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의 최대 아젠다가 되어야 하고, 그 아젠다를 위해 지역이 움직여야 한다.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에서 나오는 유명한 대목이다.

“극악무도한 자들은 ‘모두에게는 일 할 기회를, 젊은이에게 미래를, 노인들에게는 안정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하며 그들의 권력을 강화시켰지만, 그들의 약속은 실행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절대 지켜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이 했던 그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싸웁시다“

우리의 권력을 우리에게 되돌리는 싸움, 그것이 이번 대선주자를 선택하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 누구의 몫이 아니라, 우리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해숙<전북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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