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시민의식의 제고와 적용
보편적 시민의식의 제고와 적용
  • 김현수
  • 승인 2016.10.18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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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성장과 더불어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지난 몇십 년간 비약적으로 향상된 요즘에는 한 가정에 차량이 두 대인 경우가 많다. 필자가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던 30년 전에 학교에서 가정형편에 대해 조사를 하곤 했는데, 학급의 5~60명 학생 중 집에 자가용이 있는 경우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었던 것에 비교하면 짧은 기간 동안 경제적으로 정말 많이 발전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적 성장에도 아직 스스로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부르는 이는 많지 않은데, 이는 경제적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의 시민의식과 윤리의식을 인식한 데에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지 않은가 싶다.

필자는 1대의 차량을 아내와 함께 사용한다. 평상시에는 아내가 필자를 출근시켜준 후 낮에 차량을 사용하다가 퇴근시간이 되면 태우러 오는 형태로 차량을 공유하는데, 낮에 외부 회의나 강의가 있을 때 차량을 가져다 달라고 아내를 귀찮게 하는 경우가 있다. 약 2주 전에도 같은 이유로 차를 가져다 달라 부탁하였고, 아내는 필자가 재직중인 전북대학교의 정문 앞 오거리에서 좌회전하려고 대기중이었다. 이 도로는 왼쪽 두 개의 차로가 좌회전 전용으로 되어 있다. 초행인 사람에게는 다소 혼란이 생길 수 있기는 하지만 주변에 여러 형태로 왼쪽 두 개 차로가 좌회전 전용임이 분명하게 표시되어 있기에 왼쪽에서 두 번째 차로에서 좌회전 신호를 켜고 서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뒤에 빨간색 수입 SUV가 서서 자기가 직진해야 하니 비키라며 지속적으로 경적을 울리고 상향등을 켜댔다고 한다. 좌회전 차선에 좌회전하려고 서 있었으니 그냥 신호가 켜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좌회전을 했는데, SUV의 운전자는 과격하게 오른쪽 차선으로 변경하면서 추월하더니 앞을 가로막고 같이 좌회전하면서 집사람으로 하여금 학교 정문 앞에서 강제로 정차하게 하였다. 창문을 열고 논쟁이 벌어졌는데, 불같이 화를 내는 상대에게 가족은 좌회전 차선에서 좌회전했는데 왜 화를 내느냐고 했다고 한다. 그때, 상대방의 대답이 참으로 어이가 없었던 것이, 좌회전 차선에 서 있었어도 뒤차가 빵빵대면 비켜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소리를 지르더니 불법으로 유턴하고 자기가 갈 길을 갔다고 한다.

주행거리가 20만 킬로미터가 되어가는 15년 넘은 차량을 폐차할지 생각하느라 요즘 대부분 차량에 설치하는 블랙박스를 달지 않은 것이 후회되고 억울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가족이 당한 불쾌한 일을 여기서 하소연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작은 사건이 최근 우리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물리적 풍요와 도덕적 해이, 특히 자기보다 약해보이는 상대에게는 원칙조차 무시하고 자기의 생각을 강요하는 행태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소유한 차량이 고가이건 폐차를 눈앞에 둔 낡은 자동차이건, 내가 힘센 건장한 남성이건 체중이 45kg이 되지 않는 연약한 여성이든 법과 규정은 지켜야 한다. 법을 지키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워 상대방을 압박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 했다고 아파트 관리소장에게 욕설을 퍼부은 동대표로부터,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가맹점에 법과 규정에 어긋나는 일들을 강요하는 대기업, 최근 정치적 문제로 비화한 대통령 측근의 가족에 관련된 문제까지 우리 사회 전체가 남의 잘못에는 절대 관용을 보이지 않으면서 자신이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경우에는 스스로 편안함이나 이익을 위해서 지나치게 완화된 또는 왜곡된 원칙을 강제로 적용하는 세태가 만연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이미 이야기한 SUV 운전자도 뉴스에서 대기업의 갑질이 보도되면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비난하지 않을까? 법의 적용이 선택적으로 이루어지거나, 힘이 있다고 법을 무시하고 상대방의 입을 막아가면서 자신의 논리를 강요하거나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우리가 자랑하는 OECD 회원국, 하지만 OECD의 평가결과에서 우리의 경제적 역량은 높이 평가를 받지만, 사회의 도덕적 측면을 나타내는 지표에서는 항상 꼴찌 또는 하위권을 맴도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 퍼져 있는 왜곡된 의식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정권이 여러번 바뀌고 민주화가 이루어졌지만 유사한 문제가 반복해서 발생하는 이유는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 상황에 따라 신축적으로 적용되는 윤리의식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이제는 대통령부터 일반 국민들까지 모두가 이런 식의 사고를 하고 살아오지 않았는지 생각해봐야 하며, 만일 그렇다면 스스로 먼저 변하는 노력을 시작해야만 한다. 정치인, 대기업, SUV 운전자의 행태는 사회전체가 변화하여 그와 같은 일들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자연스레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현수<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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