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알기 쉽게 고치자
김영란법 알기 쉽게 고치자
  • 김종일
  • 승인 2016.10.17 17: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친구, 저녁에 소주 한잔하세!”

“좋지. 누구랑?”

“김과장이랑 셋이서.”

“그 친구 만나기가 좀 거북하니까 다음에 만나세”

‘왜 싸웠어?’

“아니! 김영란법 때문에.”

솔직히 요즘 흔히 오가는 대화다. 이른바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을 주창한 김영란 전 대법관이 스스로 밝힌 입법 제안의 취지는 이렇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웃, 친척, 학교 선후배 등 인적 네트워크 문화가 매우 강해서 그들이 개인적인 사유를 이야기하면 거절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공무원들도 ‘안 됩니다’라고 해야 하지만 할 수 없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그들이 거절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법의 취지와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크게 공감하고 있고, 다소의 불편함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우리 사회의 투명성 회복에 상당한 공헌을 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사실 우리 같은 소시민들에게는 이 법은 있으나 마나 하지만 요즘 항간에 이를 둘러싼 혼란이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업무에도 벌써 차질을 주고 있다. 사람들이 만나기를 꺼리니 의사소통이 늦어지고 이에 따라 업무의 진척 속도가 더디다. 이 법이 발효된 지 불과 보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요사이 ‘캔커피법’이라 폄하될 정도로 이 법의 악명 높은 애매모호함으로 인한 불평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학생이 교수에게 건네는 캔 커피도 불법이요, 스승의 날 달아주는 카네이션도 그것의 불법성을 놓고 갑을박론이다. 이런 사례들을 맘먹고 죄다 들추어내자면 한도 끝도 없겠다. 공정 사회를 위한 투명성 제고라는 원래의 취지와는 거리가 있는 일상의 미풍양속마저 이 법의 잣대로 휘청거리고 있다. 한 마디로 매우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다. 벌써 경영난을 겪는다는 업소들이나 업종과 메뉴 변경을 단행한 식당들 이야기가 들린다. 이 법의 적용 범위를 둘러싼 다툼의 소지가 다분해서 졸지에 커다란 먹거리 시장을 맞게 된 변호사들이 무척이나 들떠 있다는 농담마저 들린다.

만약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이 법이 계속 시행된다면 단기적으로 아주 빠른 속도로 국가경쟁력의 저하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있다. 역사적으로 비교적 오랜 기간에 걸쳐 점진적인 발전을 이룩한 서구 국가들과는 달리, 단기간에 급진적인 성장을 기록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문화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미진했다는 생각을 떨치기 쉽지 않다. 흔히 압축성장이라고 불리는 아시아의 독특한 경제 발전의 기저에는 서구와는 다른 동양만의 문화 내지는 풍토가 자리 잡고 있다. 분명,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또는 연줄을 의미하는 이른바 전통적 유교사상과 관련된 동양적 ‘?시(관계)’를 중요한 요인들 중 하나로 꼽을 수 있겠다. 이런저런 관계 속에 자주 만나면서 나누는 대화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의 신속한 교환이 우리나라 발전의 커다란 원동력임은 분명하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기울이는 막걸리 사발과 함께 오가는 대화가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튼실한 버팀목이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가로막는 것은 그에 따른 정보의 교환을 차단하는 것과 같고 그 결과는 쉽게 우리의 성장 원동력의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앞에서 말한 김영란 전 대법관이 스스로 언급한 ‘인적 네트워크’가 바로 ‘관계’ 그것일 것이다. 서양이라고 이런 학연, 지연, 혈연 등의 ‘관계’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미국 부시 대통령 아들이 또 대통령을 했었고,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인 힐러리가 이번 민주당 후보가 된 것만 보아도 확연하다.

관계가 다수를 배제한 소수의 ‘끼리끼리’라는 일견 부정적 해석을 함축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관계에 의한 부정을 방지하고자 하는 김영란법 자체의 취지와 의미는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법은 관계의 옥석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유독 그것의 부정적 측면에 기대어, 본의는 아니겠지만, 그 자체를 터부시하는 부작용이 현저하고, 벌써 이로 인하여 나타나는 문제점들이 눈에 띈다. 표면적으로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사실상 만남 자체를 어렵게 하는 내용이 다수 그리고 쉽게 눈에 띈다. 이런저런 업무와 관련된 관계자들이 만나 업무를 논의하고 당면한 현안을 풀어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련만, 만남 자체를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게끔 만드는 분위기를 만들어 버렸다. 세상 대부분의 일들이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시작되고 끝을 맺는다는 엄연한 현실을 냉정히 바라본다면, 모든 관계를 필요악 정도로 치부하고 부정시하는 현재의 법 관점은 옳지 않아 보인다. 가치중립적 시각에 기초하여, 금지와 처벌을 통해 관계 형성을 저해하는 것보다 사회 친화적인 방향으로 유도하고 권장하는 관점으로의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또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모습으로 수정이 필요하다. 현재의 법은 일반인들이 건전한 일상적 관계를 위한 만남조차 꺼릴 정도로 매우 모호하다. 누구는 만나도 되는지 밥값은 누가 내야 하는지 등등 따질게 여럿이고 답도 애매하니깐 모임을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 대세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당해 본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법’의 전형으로 인식되어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분위기다. 이에 상응하는 부작용이 없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쉽게 다시 만들었으면 좋겠다. 설사 빠트리고 지나치는 부분이 있더라도 애매모호한 조항들은 전면적으로 개정하는 것이 좋다.

김종일<전북대학교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