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것은 가짜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 이문수
  • 승인 2016.10.16 1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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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상 앞에서 머리를 쳐 막고 있기에는 햇살이 너무나 눈에 부시고, 하늘은 청명하다. 좋은 계절에 걸맞게 문화행사들이 왁자지껄하게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미술계에서는 거대한 고래들의 움직임이 의미심장하고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오늘은 필자가 주말을 이용해 관람했던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에 대한 얘기를 풀어 보겠다. 찬사는 소박하고, 비난은 격하게 일고 있는 비엔날레. 이것은 20세기에 비엔날레가 가졌던 저항적이고 실험적인 방법론과 비전을 선도하는 탄력적인 힘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불확실성 시대의 한복판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작품을 중심으로 얘기하고자 한다.

‘제8기후대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주제로 설정한 광주비엔날레는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문제에 대해 생각을 전달하고자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인류가 당면한 다양한 문제들 전쟁, 기아, 문명의 방향, 인종과 국가의 경계 등에 관한 질문이다. 이러한 것들을 예술적 상상력에 의한 미래적인 기후로 설정해서 ‘제8기후대’라는 모호하고 포괄적인 개념을 설정했다.

광주비엔날레에서는 예술을 틀이나 공간에 가두지 않고,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필자의 발목을 잡은 작품은 아르헨티나의 도라 가르시아의 <녹두서점-산 자와 죽은 자. 우리 모두를 위한>이다. 전시장의 중앙에 1980년대 5.18 민주항쟁을 증언하고 있는 서점을 재현했다. 서점의 기둥에는 추억(?)의 대자보가 붙어 있고, 준비된 의자에 앉아 자유롭게 책을 읽거나, 살 수도 있고, 그 시대의 아픈 상처와 슬픔을 되새길 수 있다.

부산비엔날레는 고려제강에서 진행하는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중-일-한의 아방가르드를 새롭게 조명하는 프로젝트인 라는 두 가지 주제로 전시를 열었다. 수영공장과 부산시립미술관 전체를 활용해서 이질적인 언어들과 다양한 생각이 공존하고 충돌하는 장을 의도한 것. 하지만 충돌과 공론, 더 나아가 화해하려는 기획 의도에 비해 지나치게 정돈되고 단정한 전시 상황은 아쉽기도 하다.

그런데도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을 작품은 조형섭의 <근대화 슈퍼>다. 버려진 신사용 자전거에 브라운관 TV를 동여매고, 작은 확성기에서는 70~80년대 한국사회에서 즐겨 사용하던 정치적 구호가 담긴 영상을 재생한 설치 작품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풍요에 대한 거대한 염원은 빈곤과 쇠락, 결핍과 부재를 동반하면서 그림자처럼 현재로 이어진다. 미술가는 그 기억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이상과 가치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전북도립미술관이 야심 찬 이상을 가지고 기획한 <아시아현대미술전 2016>이 중반을 넘기고 있다. 식견 있는 관자의 애정 어린 칭찬이나 정문일침이 고맙고, 많은 관람객이 찾아와 아시아 청년미술가의 역동성과 가능성에 공감하고 있다. 더불어 정치적 혼란과 개인의 정체성이 복잡하게 얽힌 아시아의 상황을 생동감 있는 야성과 자유로운 변방의 힘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더러는 어둡고, 우울하고, 뼈아픈 상처들을 들추고 있지만 진솔하고 생기 있는 예술적인 표현이 관람객에게 새로운 힘과 희망을 주고 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사람들은 시대마다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지도원리를 신봉하고 그것을 판단력의 지주로 삼았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갤브레이스의 말처럼 “사회를 주도하는 지도원리가 사라진 불확실한 시대”다. 현대사회는 과거처럼 확신에 찬 경제학자도, 자본가도, 예술가도, 철학자도 존재하지 않는 시대이고, 우리가 진리라고 여겨왔던 많은 것들과 합리성과 이성에 근거한 담론체계도 의심스럽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시대라는 것이다.

어차피 예술과 대면해서 좋은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것은 관자의 몫이다. 빛나는 게 다 보석은 아니다. 그리고 비슷한 것은 가짜다. 우리가 현장에 가서 옥석을 가려 보자.

이문수<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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