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낙관한 선비적 통찰의 시인
세상을 낙관한 선비적 통찰의 시인
  • 김동수
  • 승인 2016.10.0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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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13, 전병윤(全炳允:1935-)

  전북 진안 백운 출생. 전북대 농대를 졸업하고 농촌지도소장을 두루 역임한 후, 1996년 『문예사조』로 등단, 시집 『그리운 섬』, 『꽃지문』, 『무뇌』 등을 발간하였다. 한국문협 진안지부장과 온글문학 운영위원장을 맡아 전북문학상과 황금찬 문학상을 받은 향토적 서정의 선비 시인으로 자연과의 조화 속에 보다 구원한 인간의 절대 영지를 탐구한 직관적 통찰의 시인이다.

메시아가 찰나를 틈타/ 바다에 던져 놓은 고독의 쉼표/ 거기엔 자유가 있다
태고의 숨결만이 일렁이는/ 금욕의 쉼표다./ 미지의 푸른 씨앗이다.

- 「섬」 일부, 1998

인생의 윷판이 끝난 빈소엔/ 하얗게 밤을 지샌 국화가 졸고/ 마당 한 가운데 윷판에선

모야! 숫이야! 불이 붙었다// 도를 하고도 웃고/ 모를 하고도 우는 세상이다./하늘에 던져져 운명을 짓고/ 땅에 떨어지는 윷가락 ~// 윷가락을 허공에 던져 놓고/ 안개 속 길을 간다 - 「윷판」 일부, 1998

‘고독’과 ‘금욕’의 절대영지, ‘안개 속’ 같은 윷판 세상에서 인위적 유위(有爲)보다 운명에 순응하는 순명의 자세로 세상과의 친화를 도모하는 양성지향적 인생관으로 시상이 퍽 안정되어 있다.

꽃에도 지문이 있다.

얼음장 뚫고 피어난 복수초
노란 병아리보다 생생한
지문이 있어
얼음을 녹이고 꽃이 되었다.

- 중략- 

박꽃의 지문을 보면 눈이 시리다.
꽃들은 지문으로 통한다.
지문은 꽃들의 모국어다.

지문은 자존심이다.
우주의 모든 것들은 지문을 가지고 산다.
꽃에도 지문이 있다.

- 「꽃 지문」 일부, 2012

얼음장을 뚫고 노란 꽃잎을 피워 올린 복수초처럼, 그의 시는 천기(天氣)와 지기(地氣)가 하나가 되어 얼음을 녹이고 세상을 녹이며 겨울 하늘의 끝자락을 물들이다. ‘꽃에도 지문이 있다.’고 한 그의 전언처럼, 이번 그의 시에는, 그간 진안 고을의 반가(班家)에서 익힌 그의 단정한 자존과 이타성을 배경으로 맑은 하늘 아래 모처럼 ‘봄빛 반짝이는 초원’이 펼쳐지곤 한다.

우형牛兄, 이별주나 한잔 하세/ 아버지는 온기가 있는 소죽통에/ 막걸리 한 잔을 부어 주고/ 소코에 설법을 한다.

인생이나 우생牛生이나 똑 같다네/ 우생이 갱생하면 인생이고/ 인생도 갱생하면 우생인거야// 황소가 피식 웃는다/ 우생이 웃으니 내 가슴이 놓이네/ 아버지는 이슬 맺힌 눈으로 말한다. - 「아버지의 빈 잔」 일부, 2016

전병윤 시의 배경에는 진안 백운의 하늘과 흙내음이 배어있다. 어릴적 큰스님을 따라 다니던 동자승의 이야기와 팔려가는 소에게 막걸리 한 사발을 부어 주며 이별식을 고하던 아버지의 뒷모습 등, 한국적 토착 정서의 원형이 그것이다. 이런 서정에서 발원한 그의 시는 혼탁된 세사 속에서도 선악에 물들지 않고 이들을 관조, 미美와 추醜,호好와 불호不好, 이 모두를 아우르고 포용하면서 순수 절대의 영지, 곧 현상적 법신관法身觀을 지향하고 있다. (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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