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법’
‘밥’과 ‘법’
  • 나영주
  • 승인 2016.10.0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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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을 먹는 행위에 관하여 소설가 김훈은 그의 수필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저쪽 물가에 낚싯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 올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 자가 바로 나다. 이러니 빼도 박도 못하고 오도 가도 못한다. 밥 쪽으로 끌려가야만 또 다시 밥을 벌수가 있다.’ 

김훈이 말한 밥벌이는 매 끼니를 하루하루 이어가야만 하는 인간의 비애를 의미한다. 재벌총수든, 일용직 노동자든 하루 세 끼의 식사를 무사히(?) 마쳐야 김훈 식으로 표현할 때 삶을 앞으로 밀어낼 수 있다. 고단한 밥벌이는 인간의 숙명이다.  

한편으로 식사는 인간의 근원적인 쾌락 가운데 하나인 식욕을 만족시키는 행위다. 소극적으로 배고픔을 잊게 만드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쾌락을 위해 행해진다. 요즈음 티비를 켜면 넘쳐나는 식도락 프로그램들은 이러한 인간의 식욕을 시각적으로 대리만족 시킨다. 혹자는 포르노 그라피에 비유를 하기도 할 정도다. 이처럼 식도락은 인간의 근원적 욕구를 반영한다.  

식사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행위다. 최근 1인 가구가 늘면서 ‘혼밥’(혼자 먹는 밥)열풍이 불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식사는 2명 이상이 함께 한다. 타인과 밥을 함께 먹는 행위는 친밀감을 나누는 사교 행위다. 국어사전을 펼쳐보면 ‘식구(食口)’는 한집에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 혹은 한 조직에 속하여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고 적혀있다. ‘식구끼리 왜 그러느냐’라는 말로 친밀감을 표시하는 것을 보면 함께 밥을 먹는 행위는 단순한 식사의 의미를 넘어선다. 

사교의 장에서 식사는 빼놓을 수 없다. 거창한 파티나 공식행사에 있어 이런저런 조찬이나 오찬, 연애를 위한 소개팅 자리에서의 식사는 친밀감과 어색함을 해소하기 위한 필수적 절차다. 한편 식사는 권력관계를 수반한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선배나 연장자가 밥값을 낸다. 요즈음은 소개팅에서도 더치페이를 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남자가 밥 값을 내고 여자가 커피 값을 내는 관행이 있다.  

반대로 ‘갑을 관계’에서 ‘을’이 ‘갑’을 대신해 밥값을 지불하기도 한다. 식사 접대가 그것이다. 그 동안 우리 사회는 접대의 명목으로 밥 값 정도는 낼 수 있다는 관행이 있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속칭 ‘김영란 법’)의 시행은 관행에 제동을 건다. 공직자와 언론사·사립학교·사립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도 신고하지 않거나,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1회 100만원(연간 300만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형사처벌 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위 법은 식사의 권력관계를 제도로 깨트리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영란 전 대법관은 위 법을 단 한마디로 정의했다. ‘더치 페이(Dutch Pay), 좋지 않나요?’ 법률 규정을 세세히 따져가며 위법여부를 따지는 것도 좋지만 가장 단순하게 생각하면 답은 ‘더치 페이’다. 세상 모든 사람은 김훈의 말처럼 밥벌이를 위해 산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는 즐겁다. 하지만 자신의 밥 값을 남에게 미루지 말고 자신이 부담하여야 옳다.

나영주 / 신세계 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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