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를 혐오하는 사회
채식주의자를 혐오하는 사회
  • 장상록
  • 승인 2016.10.05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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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느 순간 보신탕을 먹게 됐다. 그런데 먹는 이유가 보통 사람의 경우와 조금 다르다. 기호가 아니라 비겁함과 타협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보신탕을 맛으로 먹고 있진 못하다. 오래 전 고시원 생활을 할 때다. 그 시절 난 보신탕을 입에 대지 않았다. 어느 날 점심으로 보신탕이 나왔다. 정성껏 마련해주신 아주머니께 미안함을 가지고 물었다. “이거 혹시 보신탕인가요?” 그렇다는 답을 듣고 “저는 보신탕을 못 먹습니다. 죄송하지만 다른 것으로 바꿔주시면 안될까요?” 아주머니는 내 의사대로 해주셨다. 그런데 그때 어느 식탁에선가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식사가 끝난 후 친구와 만나 잠시 담소를 나누는데 이런 얘기가 나왔다. “상록이 없을 때 옆 테이블에 있던 사람이 ‘사내 녀석이 보신탕도 못 먹는다.’며 입에 담기 민망한 수준의 말까지 퍼부어서 내가 그 사람에게 한 마디 해줬어.” 없는 곳에서 누구 욕을 못하겠는가. 나는 일면식도 없는 그에게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내가 정말 섬뜩했던 것은 따로 있다. 그 누구의 기호에 대해 비난한 사실도 없고 그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은 사안이 다른 누군가에게 그토록 적대감을 심어줄 수도 있구나.

다행이라면 그 후에도 그런 자리는 여전히 반복됐지만 그때 받은 그런 강렬한 적대감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즐겁게 동참한 자리에서 굳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 내가 보신탕을 먹게 된 이유다. 선의로 포장했지만 결정의 본질은 비겁함과 타협의 산물일 뿐이다.

동생이 책을 선물해줬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바로 그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문학에 있어서 상의 권위를 그다지 인정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내가 주목한 것은 그녀가 한승원의 딸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대학시절 한승원의 작품들을 인상 깊게 읽었다. 그런 한승원의 딸이 쓴 작품은 어떤 모습일까. 부가적으로 서구에서도 인정받은 그 보편성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단순히 번역의 문제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품 속 영혜는 어느 날 채식주의자가 된다. 문제는 그 때부터 시작된다. 그녀가 채식주의자가 된 순간 그 결정은 그녀에게만 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족을 포함한 주위사람들에게 그것은 불편함과 이상함을 넘어 기괴한 것이 되고 만다. 결국 그녀의 친정아버지는 그녀의 입에 고기조각을 넣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다. 그것을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은 그녀에게 자행되는 폭력 그 자체보다 그녀가 왜, 아무렇지도 않은 그래서 얼마든지 가능한, 조금의 양보도 하지 않는지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어쩌면 영혜에 대한 폭력은 그녀의 아버지 한 사람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녀가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모든 사람이 가해자다.영혜는 그에 맞서 극단적인 자해로 대응한다. 왜 그들은 영혜의 결정을 존중하지 못할까.

나는 보신탕을 먹는 대가로 어떤 누군가에게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영혜에 비한다면 보신탕을 받아들인 나는 사회성이 있어서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런데 나의 그 사회성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억압과 불편의 공포를 벗어나기 위한 타협의 산물이 사회성이라면 이 얼마나 섬뜩한 일이 아니란 말인가. 우리는 제국주의가 행한 범죄가 얼마나 반인류적인지 너무도 커다란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소위 말하는 미개사회는 없고 다만 우리와 다른 종류의 사회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우월함과 열등함은 없다.

보신탕과 육식을 즐길 수 있는 권리와 꼭 같은 크기로 다를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너무도 평범한 사실을 확인해야하는 것이 단지 책속 얘기일 뿐일까.

사족 하나, 딸인 한강이 자신을 이미 넘어섰다고 얘기한 아버지 한승원의 말이 결코 과하게 들리지 않는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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