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잡는 법
원숭이 잡는 법
  • 이동희
  • 승인 2016.10.04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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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폭을 소재로 한 영화나 궁중 암투를 다룬 사극을 보노라면 정작 조폭의 보스나 간신의 우두머리보다는 그 하수인들이 더 미울 때가 많다. 이럴 땐 그 하수인들을 부하라고 부르기보다는, 주로 범죄 집단에서 부하나 하수인을 속되게 이르는 ‘똘마니’가 제격이다. 우두머리들은 나름대로 ‘불의의 신념’이라도 갖추기도 하지만, 똘마니들은 특별한 동기나 이유도 없이 기계의 부속품이나 허수아비의 팔다리처럼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단식투쟁은 상대적인 입장에서 힘이 없고, 적수공권(赤手空拳)-제 한 몸 밖에는 별다른 투쟁의 수단을 갖지 못한 약자가, 자기보다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세력과 집단을 향해 제 몸을 최후의 투쟁수단으로 내려놓는 결연한 행위다.

단식투쟁의 핵심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굶어 죽어버리겠다.”는 선언이다. 혹독했던 군사독재시절 야당의 책임 있는 인사가 막강한 철권에 맞서 민주화를 위해 단식투쟁에 나선 실상을 아프게 보았던 기억이 멀지 않다. 또는 부잣집 외동딸이 상사병이 들어 ‘제집 머슴하고 혼사를 시켜주지 않으면 굶어 죽어버리겠다’며 식음을 전폐했다는 설화도 우리네 삶의 풍경에서 낯설지 않다.

이때 야당 인사나 외동딸이 기대했던 것은 독재자의 양심이나 부자부모의 측은지심이 아니다. 그 핵심은 바로 독재자를 그저 ‘잠자코’ 지켜보고 있을 민중의 ‘정의감’이요, 부자부모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을 동네사람들의 ‘공론’이었던 것이다.

이때 독재자나 부자부모가 “그래, 굶어 죽으려면 죽어봐라!”며 단식투쟁하는 사람을 외면한다면, 단식투쟁은 아무런 효과를 거둘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그런 일들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세월호의 진상을 밝히라’며 단식투쟁하는 단원고 학부모들 앞에서 통닭이나 햄버거를 먹으며 “그래 굶어죽으려면 죽어봐라!”며, 권력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 검은 세력들의 조롱을 똑똑히 목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했을 때, 잠자던 민중의 ‘정의감’이 폭발하고, 묵묵히 바라만 보던 동네사람들이 일으킬 ‘공론’마저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독재자는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민주화의 길로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으며, 부자부모는 패덕한 수전노라는 공론의 따가움을 외면할 수 없어 머슴사위를 맞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단식투쟁이 수단으로 보면 목숨을 건 단호함이 있지만,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인간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목숨을 건 당사자나, 그것을 받아주어야 할 대상자, 그리고 지켜보아야 할 대중 모두에게 ‘사람됨’이라는 공감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느닷없는 단식투쟁 앞에서 우리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마치 조폭 똘마니가 보스를 의법조치하면 식음을 전폐하겠다고 선언하는 격이거나, 민주화를 요구하면 내가 단식투쟁하겠다고 나서는 독재자의 꼴이거나, 끝내 머슴과 혼사를 시켜달라고 고집을 부리면 내가 굶어죽겠다는 부자부모를 대하는 심정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엄연한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그 결과야 어떻게든 판가름이 나겠지만, 불가불 민주화의 길로 한 걸음 나아가며 역사의 흐름에 굴복했던 독재자의 모습이나, 상사병 든 딸을 죽게 버려둘 수 없어 만석지기 살림을 머슴사위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는, 정의로운 결말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한 손에 쥔 최고 권력으로 또 한 손에 민중의 공감을 얻겠다는 발상 자체가 단식투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권력은 투명한 정치와 민생에 도움이 되는 정책으로 대중의 공감을 얻어야지, 목숨을 건 수단으로 민중의 감성을 호도할 수는 없다. 대중심리를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가볍게 여기는듯하여 볼썽사납다.

미얀마 원주민들이 원숭이를 잡으려면 단순한 덫을 사용한다. 병목은 좁고 안은 볼록한 유리병 안에 단단한 과자를 넣어둔다. 원숭이는 유리병 안의 과자를 쥐고 손을 빼보려 하지만 과자가 유리병 주둥이보다 커서 빼내지 못한다. 과자를 포기하지 않은 원숭이는 결국 잡히고 만다. 권력을 휘두르면서 민주주의를 참칭하는 권력자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이유다.

단식투쟁하는 마음결은 권력사랑보다는 사람사랑이어야 한다.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우리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 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E.디킨슨「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전문)

이동희(시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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