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대 수리유적의 미래 - 사야마이케 박물관
일본 고대 수리유적의 미래 - 사야마이케 박물관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6.10.04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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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벽골제, 고대 문명의 세계유산이다<5>

사아먀아케 박물관 전경(김미진 기자)

 일본 오사카사야마시에 위치한 사야마이케(狹山地)를 걷다 보면 연못의 북쪽 제방에 독특한 분위기의 현대식 건물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사야마이케에서 출토된 귀중한 토목유산을 알리고 미래에 계승하기 위해 만들어진 오사카 부립 사야마이케 박물관(관장 구라쿠 요시유키)이다. 박물관은 1996년 사야마이케에 대한 발굴조사를 마친 3년 후부터 건설공사가 시작돼 2001년에 문을 열었다. 사야마이케 박물관은 연면적 4,987㎡, 상설전시실 면적 1,815㎡, 특별수장고, 일반수장고, 특별전시실 등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대부터 사람들의 삶에 깊은 관계를 맺고 영향을 끼친 치수(治水)와 관개(灌漑), 토지개발의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편집자주> 

▲ 사야마이케 박물관 입구에 설치된 친수공간 (김미진 기자)

 지난 8월, 더운 여름날에 사야마이케 박물관을 찾았다. 너무도 따갑기만 한 햇볕을 피해 들어선 박물관의 초입에서부터 기분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우선 박물관 내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사야마이케 제방에서 내려와야 했다. 제방 위와 아래쪽의 기온차는 상당했고, 흐르는 땀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박물관 정원에 인공 폭포를 설치해 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때마침, 건물의 외벽을 타고 시원하게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처럼 친수공간을 통과해 건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짜여진 동선은 바로 물이 가진 생명력, 사야마이케가 품고 있는 가치를 전달하는데도 손색없어 보였다.

▲ 사야마이케 박물관은 거대한 제방 본체를 이축해 전시하고 있다. (김미진 기자)

 박물관 내부에 진입하니 입이 쩍 벌어지는 광경이 펼쳐졌다. 작은 로비의 바로 맞은 편에는 제방의 한 단면을 잘라내 그대로 옮겨놓은 높이 15m, 밑변 62m 크기의 사다리꼴 모양의 거대한 제방이 관람객을 압도했다. 1400년간의 역사를 켜켜이 간직하고 있는 저수지로의 기막힌 초대가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이 제방을 전시하기까지 많은 공력이 들었을 터다. 거대한 제방 본체에 대한 보존 이축은 세계에서도 최초로 시도된 것이다. 토층의 단면을 101개의 블록으로 떼어내 합성수지를 사용해 하나하나 경화처리한 후 박물관 내로 옮겨서 재조립한 그야말로 과거와 현재의 토목기술의 최고봉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흙 블록의 반대측은 토층단면의 전사를 붙여놓아 마치 박물관 가운데 제방이 서 있는 듯이 연출돼 눈길을 끌었다.

그래서일까. 박물관에 발을 들이는 순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조우하는 영험한 분위기에 묘한 감동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 쵸겐 사야마 연못 개수비와 쵸겐상(김미진 기자

 박물관은 크게 7구역으로 나눠 고대의 토지개발에 대한 역사에서부터 1988년 이후의 개수로 홍수를 조절하는 치수댐으로 변환하기까지 내용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1400년 동안 반복된 개수 공사의 자취와 당시의 최첨단 토목기술을 한 자리에서 파악할 수 있도록 유물과 자료를 모으고, 일반인들의 이해가 쉽도록 배려한 전시구성이 돋보였다. 제방 앞에는 중요문화재인 아스타 시대, 에도시대의 히사시히(동쪽 송수관)가 설치돼 있었고, 안쪽에는 쵸겐사야마연못개수비(重源狹山池改修碑) 등 사야마이케에서 출토된 유물과 유구가 이축 전시돼 있었다. 사야마이케의 상징으로써 친숙함을 자랑하는 취수탑도 관내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물론, 사야마이케 박물관이 세계적 명소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은 비단 그 규모와 내용 때문만은 아니다. 이유는 또 있다.

▲ 사야마이케 박물관 관람객 모습(사아먀이케 박물관 제공 사진)

 바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설계에 의해 박물관이 탄생했다는 점이다. 안도 타다오의 작품 중에서 상업건축을 제외하고는 물과 연관되지 않는 작품은 손에 꼽는데, 그중에서도 사야마이케 박물관은 수작으로 손꼽힌다. 특유의 노출콘트리트의 매력을 뿜어내는 외관은 물론, 원형광장과 원형전망대 등의 오브제까지 더하고 있어 건물 자체가 훌륭한 예술품으로 다가온다. 오로지 그의 건축물을 만나고 싶어 이곳을 방문하는 관람객들도 상당수라는 설명도 이해가 됐다.

이와 함께 사야마이케 박물관은 개관 후 지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동아시아적 시야로 자료나 정보를 수집하는 학습, 연구센터로써 자리매김해나가고 있으며, 각종 강연회와 이벤트를 통해 시민에게 문화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자라나는 세대들을 위한 학습과 교육의 장으로서도 문턱을 낮춰 그야말로 지역의 문화 거점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 구라쿠 요시유키 관장

 ▲인터뷰 - 오사카 부립 사야마이케 박물관 구라쿠 요시유키 관장

“한국에서의 고고학 연구의 성과가 일본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고 중요합니다. 사야마이케와 연관이 깊은 김제 벽골제는 물론, 부여를 포함해 백제문화중심은 일본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김제 벽골제가 세계에 알려지는 일 또한 우리 일본에게도 너무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001년 초대관장으로 현재까지 사야마이케 박물관을 지키고 있는 구라쿠 요시유키(77·工樂善通) 관장은 김제 벽골제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김제 벽골제와 관련해 40여년 전 발굴조사 결과가 굉장히 소규모이다 보니 믿을만한 결과가 되지 못했는데 최근의 발굴 성과들을 보면서 신뢰가 높아졌고 굉장히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야마이케의 발굴조사를 통해 밝혀진 공법이 한국과 너무도 같은데다, 백제와 신라 중 어느 영향권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게됐는지가 큰 관심사다. 때문에 김제 벽골제에서 밝혀지고 있는 여러 고고학적 성과들을 매우 중요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만들어진 시기는 다르지만 사야마이케와 벽골제의 공통점도 상당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구라쿠 관장은 “결국은 쌀을 먹는 문화, 농업의 유구한 역사가 함께하고 있는 만큼 양국이 손을 잡고 세계문화유산등재에도 힘을 써야한다”면서 “벽골제가 일제시대에 파괴돼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다행히 김제시에서 복원 의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 기쁘다. 벽골제가 복원이 되면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가까워질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선 김제 벽골제에 대해서 시민들의 이해를 구하고, 많이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고고학적 성과를 오픈해서 보여주고, 사랑을 받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벽골제 또한 사야마이케와 마찬가지로 시대별로 많은 흔적들을 발굴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시민들에게 알기 쉽게 보여줄 수 있도록 잘 정리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일본 오사카 = 김미진 기자

◆자문위원 최완규((재)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원광대 교수)

성정용(충북대 교수·한국상고사학회 회장)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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