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처럼 단순하게
유목민처럼 단순하게
  • 이용호
  • 승인 2016.09.2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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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회관 내 방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가장 자주 보이는 반응은 ‘어, 아무것도 없네’이다. 사무실에는 국회 사무처에서 들여 준 책상, 소파와 탁자, 그리고 책장 등 기본적인 집기 이외에 개인적으로 꾸미거나 가져다 놓은 물건이 거의 없다.

엊그제도 기자 두 명이 들어서면서 ‘방이 너무 텅 비었는데, 조금 꾸미시지 그래요. 다른 방은 이렇게 썰렁하지 않은데요’라고 했다. ‘어차피 잠시 머물다 갈 곳인데, 뭐’ 이렇게 대답했더니 이내 “무슨 소리예요. 최소 3선은 하셔야죠”, 이러는 것이다.

선배 동료 의원 사무실을 방문해 보면 취향에 따라 분위기가 저마다 다르다. 벽이 가득할 정도로 큰 그림을 붙여 놓은 곳도 있고, 각종 자료와 책이 산더미처럼 쌓인 곳도 있다.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 분위기도 있고 미술과 조각 작품 전시장 같은 사무실도 있다. 자신의 성과를 사진으로 표출해 놓은 사무실도, 힘찬 붓글씨로 의원 자신의 기상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곳도 있다. 25, 6년 전 정치부 기자 시절 한 의원 방은 새 동물원을 방불케 했다. 그 사무실에 들어서면 수십여 종의 새가 지저귀는 것이었다. 상상하면 그럴듯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새똥 냄새로 악취가 그득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요즘 국회의원들은 자료 속에서 산다. 상임위 한 번 열려도 각종 보고 자료나 요구 자료가 산더미이다. 거기에 토론회 자료나 각종 이익 단체들이 보내온 서류나 책들이 즐비하다. 사무실을 찾은 분들이 빈손으로 오기 미안해 들고 오는 것이나 자료만 쌓아놓아도 곧 사무실은 만원이 될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꾸만 단순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가지고 있던 것을 버려야 단순해지는 것 아닐까. 한 때는 책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당장 읽지 않은 책이라도 다음에 보겠다면서 쌓아 놓다 보니 집에 가장 큰 짐은 책이다. 이사할 때 조금씩 정리했는데도 아직도 적지 않다. 이번 이사 때는 눈을 딱 감고 절반은 버릴 각오이다.

돈이나 권력, 명예는 물론이고 책이든 음반이든, 가구든, 그 무엇이든 과도한 집착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보지 않은 것, 그리고 현실적으로 볼 수도 없는 책을 끼고 있을 이유는 없다.

쓰지도 못할 만큼 돈을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럼에도, 어떤 것에 집착하다 보면 점점 그것에 대한 욕망이 자라난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으로, 존재 이유로 착각하기 쉽다.

좋아하는 한 선배가 이제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물으니 흔적을 남길 것도 없고 나중에 자식들이 그것을 버리고 태우는 것도 일이라고 했다. 지나친 면이 있지만 스스로 비우고 내려놓는 자세가 마음에 와 닿았다.

의원회관의 사무실은 그저 스쳐가는 곳일 뿐이다. 모두 잠시 주어졌을 뿐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자칫 사무실을 꾸미다 보면 애착이 움트고 저마다 위치를 망각할 가능성이 있다. 사람은 어디 있던 역할이 끝나면 떠나야 하는 ‘유목민’일 뿐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리가 자기인 것으로 착각하고 산다. 하지만, 부도 권력도 무상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방은 최소한의 가구만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방에 오로지 스탠드 하나와 바닥에 앉을 조그만 방석 하나가 전부이다. 그는 그곳에서 명상을 통해 스스로와 마주한다. IT의 거장이지만 전자 기기 하나도, 책 한 권도 없다. 오로지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기 위해 텅 비다시피 한 공간에 머무는 것이다.

요즘은 누구나 너무 많은 사람과 이렇게 저렇게 엮여 산다. 심지어 일면식조차 없는 사람과도 SNS 등을 통해 친구가 된다. 정작 나 자신은 점차 잃어 가면서……. 단순한 것이 행복이다. 그래야,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낼 것이다. 그러므로 가진 것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자.

이용호<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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