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 흙수저 단상
금수저 흙수저 단상
  • 오종남
  • 승인 2016.09.2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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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래 유행하게 된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있다. 서양에서 부자, 특히 물려받은 부자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던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born with a silver spoon in his mouth)’이 우리나라에서 다소 변형되어 사용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본래의 은수저 대신 금수저라는 말을 쓰고, 대칭되는 말로는 흙수저라는 말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이 유독 요즘에 널리 사용되는 이유는 아무래도 세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젊은이들이 취업이 힘들고 먹고살기가 어렵다 보니 부모 잘 만나 취업 걱정, 돈 걱정 없이 사는 2, 3세들을 부러워하며 풍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금수저는 부잣집에서 태어난 행운아, 흙수저는 그렇지 못한 집에서 태어난 사람 정도로 쓰이는 듯하다.

젊은이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렇게 금수저 흙수저로 갈라놓는 ‘수저 계급론’으로 해결되는 일은 별로 많지 않아 보인다. 흙수저라고 좌절한들, 금수저를 부러워한들 삶에는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많은 성공 신화의 주인공 가운데는 금수저보다 흙수저가 많고, 흙수저들이 겪은 고난과 역경은 훗날 인생을 값지고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사례를 많이 보지 않는가?

필자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방송대) 석좌교수로서 2016년 봄 학기에 우리나라 명장 네 분(한 분은 기능한국인)을 모시고 ‘세상을 만드는 용기-대한민국 명장을 만나다’라는 TV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분들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소위 금수저가 아니다. 흙수저로 태어났지만, 학력만이 지나치게 중시되는 우리 사회의 편견을 딛고 실력을 쌓아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고자 도전한 분들이다. 방송대의 특성상 재학생이 아닌 누구라도 시청할 수 있는 공개된 방송인 데다가 재방송을 많이 하다 보니 지인으로부터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는 전화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전쟁 중 고창에서 태어난 필자는 한 살 때 아버님이 군인으로 전사하시는 바람에 홀어머니의 외아들로 자랐다. 당시 60여 명 초등학교 동기 가운데 10여 명만 중학교에 진학하는 열악한 여건이었지만 어머니의 교육열 덕분에 고등학교까지는 순탄하게 진학할 수 있었다. 전국적으로 초등학교 졸업생 5명 가운데 1명만이 중학교에 가는 20% 내외의 진학률일 때 주저 없이 중고등학교에 보내주신 어머니께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과 대학 진학 사이에서 진로 고민을 하던 필자는 가정교사를 하기에 유리한 법과대학에 지원하고, 만일 합격하지 못하면 9급 공무원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필자 역시 요즘 말로 흙수저로 태어나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대학에 갈 수 있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필자는 방송대로부터 석좌교수 초청을 받았을 때 주저함이 없이 응낙했다. 방송대는 필자가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면 취업 후 선택했을 대학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방송대 석좌교수 3년 동안 소위 ‘흙수저’들의 인생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삶의 자세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타고난 어려운 환경을 탓하는 대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야말로 성공적인 삶, 행복한 삶을 사는 지혜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 대목에서 독자로부터 지금의 현실은 과거 필자가 살아온 시대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반론이 나올 법하다. 필자도 그 점에 충분히 수긍한다. 그렇더라도 흙수저로 태어난 것을 한탄하는 젊은이들에게 금수저든 흙수저든 긴 인생에서 보면 마음먹기에 따라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도전하라고 권하고 싶다.

오종남<새만금위원회 민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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