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칭 ‘김영란법’ 시행에 즈음하여
세칭 ‘김영란법’ 시행에 즈음하여
  • 주낙영
  • 승인 2016.09.2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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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인 딸에게 “요즘은 명절에 양말 한 짝도 안 들어오나 보지? 빈손으로 오게”라고 농담을 했다가 핀잔을 들었다. “그런 거 없어진 게 언젠데 아빤 그런 말씀을 하세요? 담임과 학부형은 직무관련자라서 커피 한 잔도 얻어 마시면 안돼요.” 정색을 하고 되받으니 무안해지는데 내심 설마 그럴 정도 까질까 싶다. 마침 김영란법 관련 직장교육이 있어 들어보니 단돈 만 원이라도 직무관련 대가성이 있으면 과태료부과 대상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형법상 뇌물죄로 처벌될 수 있단다. 소위 3-5-10이라고 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원 이하면 다 면죄가 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그동안 사회통념상 허용 내지 묵인됐던 많은 관행들이 제재 대상이었다. 세칭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됨에 따라 우리 사회에 큰 파장과 변화가 예상된다. 우선 과거 협의의 공직자에 한해 엄격하게 적용되던 부정부패 관련 법 대상이 ‘소위 공직자 등’으로 확대되어 국민의 상당수가 이 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그 대상에는 국가·지방 공무원은 물론 공직유관단체 및 공공기관, 각급 학교와 학교법인, 언론사의 임직원, 공무수행 사인까지 포함된다. 그 숫자가 184만 명에 배우자까지 합해 약 300만 명이나 되고 이들 ‘공직자 등’에게 부정청탁을 하가나 금품을 제공한 자도 처벌을 받게 된다고 하니 사실 모든 국민이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이처럼 법 적용대상이 광범하고 법으로 금지하는 행위 유형이 매우 다양해서 우리 사회에 미칠 충격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한다. 가령 지방의원이 공무원에게 부당한 인사청탁이나 인허가 관련 청탁을 해서도 안되고, 기자에게 홍보기사를 부탁하면서 촌지를 건네서도 안된다. 대학부속 병원의사에게 병실 특혜를 부탁하며 선물을 주어서도 안되고 도시계획 위원인 지인 교수에게 용도지구 변경 청탁을 하며 술을 사도 안된다. 이 밖에도 수많은 사례가 있을 터인데 게 중에는 그동안의 관행에 비추어 위법성 여부가 애매한 경우도 많을 것이다. 물론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행위에 대해서는 면죄가 되도록 법에 규정하고 있지만 사회상규가 무엇인지 그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부정한 청탁이나 금품 등을 수수한 자는 반드시 신고를 해야 하고 신고를 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게 되어 있기 때문에 자칫 어설픈 행동을 했다가는 큰 창피를 당할 우려마저 있다. 이래저래 각종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사법부의 판례가 쌓여 기준이 명확해 질 때까지는 다들 몸을 사리느라 사회경제 활동이 상당히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보상금을 노리는 파파라치 양성학원까지 성행한다니 말이다.

하지만 대다수 선량한 공직자 입장에서는 이 법이 크게 새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법에 규정된 많은 행위들이 기존의 형법이나 공직자윤리법 등을 통해 규제되어 오던 것들이다. 그리고 당초 정부안에 있던 이해충돌방지 규정이 국회 심의 과정에서 빠져 오히려 크게 후퇴한 모습이다. 부패인식지수가 낮은 대부분의 선진국이 이해충돌방지를 법제화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조만간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참고로 우리의 선조는 부패방지를 위해 어떤 법제를 가지고 있었나 살펴보니 지금보다 더 엄격한 규제를 하고 있음이 발견된다. 경국대전의 분경(分境) 금지법이 바로 그것인데 ‘분주하게 (권문세가를) 찾아다니며 (인사청탁 등) 이익을 다투는 행위’를 엄금하면서 이를 어기면 사형 다음으로 무거운 장(杖) 100대, 류(流) 3천리의 형벌에 처하였다. 또 조선조의 형법전인 대명률에서는 관리의 횡령이나 독직, 특히 대가성 없는 재물 수수에 대해서도 유형별로 상세한 규정을 두고 엄벌하였다. 이런 규정들이 실제 제대로 지켜졌는지는 의문이지만 과거 선조들이 그랬고 현대 선진국 법제의 흐름도 그렇다고 하니 대세를 막을 길은 없을 듯하다. 다만 법의 오남용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고 경제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법이 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향한 새로운 청렴문화 정착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각별한 주의와 정성을 모아야겠다.

주낙영<지방행정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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