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1, 존재의 조건
시간 1, 존재의 조건
  • 최정호
  • 승인 2016.09.2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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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의 노화현상에 관하여 ‘시간의 침식’이라는 제목으로 의협 학술대회에 발표준비를 하다가 50년도 더 된 나의 사진을 발견하였다. 볏단을 뒤로하고 내복차림의 3~4세 아이가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다. 농부인 할아버지 댁에서 찍은 사진이다. 50년이 지난 최근에 찍힌 나의 사진을 보니 늙고 활기를 잃어버린 모습이 처참하다. 저 아이와 현재의 나는 동일한 사람인가? 구성물질과 전혀 다른 기억을 하는 두 사람은 동일인인가? 나라는 신체는 성장과 발육을 거쳐 노화가 진행되는 변화 체이다. 내가 나를 나라고 인식해 왔지만, 오늘 나의 몸은 어제의 몸과도 같지 않다. 3살 때 내가 인식했던 ‘나’는 50년이 지난 현재의 내가 알고 있는 ‘나’와 양적 질적으로 같지 않음은 자명하다. 정신분열 기능을 가질 수 없는 나는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만약 3살의 ‘나’를 내 정신 속에서 만난다면 비에 젖어 흐릿한 창문 너머로 보이는 듯 희미한 기억의 조각으로 다가올 것이다. 지금의 ‘나’를 3살의 ‘나’는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아마도 “누구세요? ‘라고 물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르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늘 타인인가? 그렇다면 한 개인의 일탈에 관하여 우리는 동일인이 아니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것인가? 오래 전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민 끝에 “나는 나의 기억이다.”라고 말했다. 몸과 마음이 변하지만 내가 나를 나로 인지하는 이유는 ‘기억’을 통해서이다.나는 나의 ’기억‘의 총체일 뿐이다. 나의 ‘기억’은 뇌에 저장되어 있는가? 저장되어 있다면 어떤 원자적 혹은 분자적 변환으로 고정되어 있는가? 정신과 물체의 연결고리는 수 천 년 전부터 현재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나는 늙어 가면서 사악하게 변해가는 나의 얼굴을 무기력하게 관찰한다. 우리는 어쩌다 아름다운 젊은 시절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본 뒤에는 현재와 극단에 가까운 대조 때문에 더욱 시간의 잔인함에 좌절한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 모든 사람들을, 그리하여 종국에는 나 자신을 산산이 부숴버리고 나를 고통으로부터 구원한다. 시간은 불가역적이다. 모든 것은 지나가며 시간에 거역할 수 없다. 슬픔마저 시간의 날개를 타고 날아가 버린다. 시간이 왜 과거에서 미래로만 흘러가는지는 알 수 없다. 고립 계에서는 항상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이러한 방향은 비가역적이기 때문에 시간은 미래로 향한다. 이러한 시간의 방향성을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열역학 제2법칙과 무관하게 우리는 과거로 되돌아가는 타임머신을 상상하지 않는가?.

나의 모든 경험은 반드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발생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하여 각각 다른 관점을 가지는 인간들도 모두 시공간이라는 포괄적이며, 보편적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시간은 무엇인가? 과거, 현재, 미래는 인간의 시간 경험을 자연스럽고, 포괄적으로 구분하는 방식으로 인정되어왔다. 우리에게 시간은 외부의 어떤 것과도 관계없이 동등하게 흐르는 것이며 이를 ‘시계’로 확인할 수 있다. 아이작 뉴턴이 “수학적이며 진리적인 절대시간은 외부의 그 어떤 것과 상관없이 그것 자체로 흐른다.”라고 한 주장은 우리의 세계관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칸트는 시간을 사건을 인식하기 위한 개념으로 파악하여 “시간은 모든 경험의 주관적 형식”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시간이 주관적 형식이라면 객관적 시간의 형식인 ‘시계’의 동질적 현상은 어떻게 설명되는가? 재미있는 놀이에 빠져 본 사람이라면 어느새 시간이 빠르게 지나 해진 후에 늦게 귀가하여 화난 부모님에게 꾸중을 들은 경험이 있다. 또한, 야간 자율학습시간은 왜 그렇게 더디 가는지도 겪어 보았다. 시간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리량인지, 칸트의 주장대로 경험의 주관적 형식에 불과한지 아직도 논쟁 중이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흐름이 가지는 상대성에 대한 의문이 19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최정호<최정호 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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