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정신대 최희순 할머니 “굶주림과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근로정신대 최희순 할머니 “굶주림과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 박기홍 기자
  • 승인 2016.09.2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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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대일(對日) 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여성근로자 지원 조례’ 발의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일했어요. 일본 가면 돈 벌 수 있다고 했는데, 돈은커녕 굶주림과 강제노동에 시달렸지요.”

 일제 강점기인 1944년, 열셋의 꽃다운 나이에 일본으로 강제 동원된 여성피해 근로자인 최희순 할머니(87)가 22일 전북도의회에서 생생한 피해증언에 나섰다. 도의회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이날 오전 ‘전북 대일(對日) 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여성근로자 지원 조례’ 제정을 위한 세미나를 하고 최 할머니의 증언을 들었다.

 전주시 출생의 최 할머니는 전주 해성심상소학교 6학년 때 학교를 찾아온 일본인으로부터 여자근로정신대에 들어갈 것을 권유받았고, 1945년 2월 전주에서 50명이 함께 출발해 그해 3월 1일 일본에 도착했다.

 최 할머니는 “일본 후지코시에서 베어링2과에 배치돼 베어링 만드는 일을 했다”며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에 출근하고 밤 10시 취침 시간까지 남은 시간이 없을 정도로 강제노동에 시달렸다”고 회고했다.

 “병이 나도 휴가를 얻거나 병원엔 갈 수 없었어요. 기숙사 방 하나에 25명 정도가 생활하며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호되게 혼이 났지요. 된장국에 밥을 말아 먹으면 안 된다는 규칙을 지키지 않아 벌 받은 적도 있습니다.”

 최 할머니는 “배가 몹시 고프고 괴로운 생활이었다.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기숙사에서 도망친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다”며 “전쟁이 끝나기 얼마 전부터 매일 공습경보가 울려 잠조차 잘 수 없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최 할머니는 “후지코시에 있는 동안, 임금은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며 “일본에 가기 전에 약속했던 꽃꽂이나 서예 시간은 없었고, 한국에 있을 때 일본인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었다”고 분개했다.

 최 할머니는 1945년 8월 해방 이후인 같은 해 10월 겨우 귀국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일본 정부와 후지코시 회사가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잘못에 맞는 사죄와 보상을 해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의회 송지용 의원(완주 1)과 국주영은 의원(전주 9)은 이날 세미나를 계기로, ‘전북 대일(對日) 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여성근로자 지원 조례’를 공동 발의했다.

 송 의원은 “여성 근로정신대도 종전 후 고국에 돌아와 사회생활에 많은 차별과 고통을 받아왔다”며 “역사적 진실을 확인하고 피해자들의 자존감을 회복해 주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한편 일제 강점기에 전북에서 강제로 동원된 피해근로자는 무려 1만6천800여명에 달하며, 이 중에서 840여 명만 생존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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