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초 시인의 영토, 전라북도의 정서, 그 ‘아구똥’ 함에 대하여
이병초 시인의 영토, 전라북도의 정서, 그 ‘아구똥’ 함에 대하여
  • 정동철
  • 승인 2016.09.21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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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나는 문학예술을 포함한 모든 장르의 작가들은 필연코 자기 자신의 영토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편이다. 굳이 말한다면 영토를 가지고 있는 작가들은 그 영토의 주인, 즉 영주이거나 영토 내의 절대 권력자일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작품 세계 또한 그 작가가 가지고 있는 영토의 강역과 영토의 질에 그 궤를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시인 백석을 생각한다. 그는 ‘돗바늘 같은 털이 드문드문 백인 도야지 고기를 시꺼먼 맨모밀국수에 얹어서 한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을 얘기하고‘말상을 하고 범상을 하고 쪽재비상을 한 녕감들과 개발코를 하고 안장코를 하고 질병코를 한 녕감들이...사나운 즘생같이들 사러져간’ 석양을 노래한다. 평안북도 언어와 대륙 정서는 백석의 영토이다. 어느 누구의 접근도, 침략도 허용하지 않는 백석만의 영토이다.

 이병초 시인의 시집 ‘까치독사’를 읽으면서 그의 영토를 생각했다. 그의 문학은 전라북도의 언어와 정서를 강역으로 하고 있다. 전라북도의 언어는 늘 천민의 언어였다. 도둑들의 언어였고 사기꾼들의 언어였고 깡패들의 언어였다. 그냥 전라도라고 말해버리기에는 너무 엄벙하고 헐렁하다. 그의 시에서 전라북도의 언어와 정서가 남도의 그것과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전라도로, 호남으로 통칭되는 지역에서 북도의 정서와 언어는 또다른 의미의 소외이고 차별이기 때문이다.

 그가 고맙다.

 고라니가 보리밭 일곱고랑을 뛰어넘고 아지랑이가 나비수저로 팔랑팔랑 시냇물을 떠먹었지야 털비지 근 반 잉걸불 뫼고 옻순에 싸먹음서 무덤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응게 아비는 나보다 덜 심심허겄다 이런 생각도 혔지야 -만남 일부-

 즈아부지 즈아부지/아덜떨이랑 시랑배미 눈곱배미/억척겉이 지어낼 팅게/ 눈 펜안히 감으시소잉/몸땡이는 캄캄허게 식었드래도/귀는 열어둔다는디 즈아부지/시방 내소리 듣고 있지라 -입관 일부-

 전라북도의 말 중에 ‘아구똥하다’라는 말이 있다. 가진 것 없고 내 줄 것 없이 못난 주제에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은 자들에게 기죽지 않는 전라북도의 근성을 표현한다고나 할까. 이병초의 시 속에서 구현되는 타자들도 하나 같이 ‘아구똥하다’. 가난하고 못배웠지만 거칠고 당당하다. 이러한 아구똥함이 ‘몸땡이째 끼적거리고’, ‘털비지 근 반 잉걸불 뫼고 옻순에 싸먹음서’ 전라북도의 언어와 전라북도의 감성을 만나서 증폭되고 있음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마치, 백석의 감성이 평안북도의 언어와 정서를 만나서 백석의 문학이 되고 백석의 영토가 된 것처럼.

 그렇다면 이병초 시인은 백석이 식민지 조국의 현실을 돌파하고자 평안북도 언어를 차용했던 것처럼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전라북도의 언어와 정서를 그의 영토에 편입시켰을까? 아니다. 그저 이 전라북도의 정서와 언어가 그냥 이병초 시인 그 자체라고 주장하는 것이 타당하다.

 시벌, 언지는 아재가 우떨헌티 밑밥 멧밥 챙겨줘봤간디 그려, 허벌창나게 디리 패대기만 헌 아재 눈치 봄서 아즉도 살으란 말여, 저런 순 싹동배기야 -윷놀이 일부-

 근디 생각을 암만 고쳐묵어도 술허고 담배, 여자는 못 끊것다잉 어이, 군산떡 여그 새우젓 안줘? 새우젓 없으먼 아무 젖이나 도랑게! -군산집 일부-

 ‘젓’과 ‘젖’의 짓궂은 변용이라니. 자신의 영토에서 이병초 시인은 바지런하다, 야물고 단단하다. 굶주린 살가지와 올무에 걸린 고라니와 맷돼지와 너구리를 불러들여 한바탕 놀다가 이내 기름진 대지로 승화시켜 영토 곳곳을 풍성하게 한다. 올 가을 그의 영토에 한번 놀러가 볼 일이다.

 / 글 = 정동철 시인

 2006년 광주일보와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 전주에 살고 있으며 2014년 작가의 눈 작품상을 수상했다. 전북작가회의 부회장이며 우석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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