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없는 성장’ 그늘과 ‘기본소득 도입’ 논의에 대하여
‘임금 없는 성장’ 그늘과 ‘기본소득 도입’ 논의에 대하여
  • 최낙관
  • 승인 2016.09.0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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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대한민국 국회 입법조사처에 의해 발간된 “기본소득 도입 논의 및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왜냐하면, 이제 한국에서도 근로여부와 별개로 모든 국민에게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제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배경에는 복지선진국들의 지속가능한 복지국가에 대한 고민, 즉 ‘기본소득’의 도입이 심화하고 있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보는 인식에 일정부분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대안모색의 파장이 머지않아 우리 한국사회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과연 이러한 논의의 직접적인 출발점은 무엇일까? 아마도 직접적인 원인은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불평등 문제와 그 맥을 같이한다고 본다. 분명한 것은 그간 한국사회의 경제적 발전을 견인했던 성장 동력은 세계적인 경쟁압력 속에서 점차 활력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중되고 있는 기업중심의 ‘임금 없는 성장’은 그동안 우리사회를 지탱했던 수많은 임금근로자의 삶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고 이와 동시에 노동시장에서 불안정한 직업과 저임금은 물론 사회보장제도에서조차 배제되는 수백만의 일명 ‘프레카리아트’(Precariat)를 양산하는 사회악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진통과 파행을 거듭하며 결정된 2017년 최저임금은 전년대비 440원 오른 시간당 6,470원으로 결정되었다. 이를 월급으로 환산하면 1,352,230이며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자 민낯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국 70여 지자체에서 실질적인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저임금계층의 임금하한을 높이기 위해 최저임금보다 조금 나은 생활임금을 시행하거나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인식과 함께 시민사회와 학계를 중심으로 조금씩 목소리를 내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최근 세계 최고의 생활과 복지수준을 자랑하는 스위스가 실업자를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 즉 성인에게 매달 2,500 스위스프랑(한화 약 300만원) 그리고 어린이와 청소년 등 미성년자에게 매월 650 스위스프랑(한화 약 78만원)을 조건 없이 지급하는 찬반 국민투표들 실시한 바 있다. 결론부터 보자면 국민소득 도입은 찬성 23%, 반대 76.9%로 부결되었지만, 이와 별개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중 하나인 핀란드는 국가차원에서 내년부터 모든 국민에게 매달 약 70만원을 조건 없이 주는 기본소득 지급정책을 실제로 운영하기로 결정해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보수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복지실험이 삶의 질을 높이기보다는 오히려 근로의욕을 감소시키는 포퓰리즘 정책에 불과할 것이라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중도 우파성향의 핀란드는 기본소득정책이 9%를 넘어서 역대 최고 수준의 실업률을 낮출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이 고용을 증진시키고 불평등 완화는 물론 현 사회보장제도를 간소화할 수 있다는 정책효과에 기대를 걸고 있다.

복지는 보편적으로 하고 과세는 누진적으로 하는 것이 분명 효율적이다. 보편적 복지의 결정판이자 현재 진행형인 기본소득의 성패를 미리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확신에 찬 핀란드의 용기 있는 결정이 부러울 뿐이다. 기본소득이 국민 모두에게 기본적인 소득에 대한 권리로 인정되어 개인의 적극적인 자유를 확대하고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라는데 동의한다면, 그들의 실험과 성공이 복지 후발주자인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매우 크다고 본다. 지금은 복지에 있어서도 ‘후발주자의 이점’을 충분히 살리는 공론의 장이 확대될 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낙관<예원예술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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