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Wh와 라면
kWh와 라면
  • 김종일
  • 승인 2016.09.0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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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던히도 더웠던 이번 여름, 냉방기기 사용이 부쩍 늘면서 가정용 전기 사용량에만 적용되는 전기요금 누진체계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우리나라 한 가구당 한 달에 사용하는 평균 전력량은 대략 350kWh라고 한다. 전기 요금을 부과하는 기본 단위가 되는 킬로와트시(kWh)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별도로 물리 공부를 할 것까지는 없을 것 같고, 1kWh의 전력량이 얼마나 되는 에너지인지만 대충 살펴보기로 한다. 오늘의 얘기는 생물학적인 측면은 무시하고 물리학에서 말하는 에너지 등가 규칙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도 반드시 염두에 두기로 하자.

우리들이 흔히 볼 수 있는 식당 천정에 쭉 박혀 있는 10W짜리 LED 전구 4개를 24시간 켜놓으면 대략 1kWh가 소비된다. 이게 어느 정도의 에너지인지 알 수 있는 쉬운 예를 들어 보면, 라면 한 그릇에 찬밥 한 공기 말아 먹으면 그게 딱 1kWh라고 보면 거의 맞다. 만약 4인 가족이 한 달 내내 삼시 세끼를 그렇게 라면에 밥만 말아 먹고산다 치면 모두 합해 360kWh가 되니까, 한 가정에서 한 달 동안 사용한 평균 전력량 350kWh와 얼추 비슷하다. 그러니까, 적어도 전기에 관한 한,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매일 세 끼니를 라면으로 때우고 사는 극빈 가정 수준의 근검절약을 하고 있다고 봐도 좋다. 실제로 우리나라 한 사람당 가정용 전기 사용량을 보면 미국 사분의 일 수준이고 OECD 평균의 절반 정도다. 일반 가정에서 전기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은 크게 일리가 없다.

몸무게가 70㎏인 성인 남성이 하루를 사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3kWh 언저리다. 그러니까 영양학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세끼를 라면에 밥만 먹어도 에너지는 모자라지 않겠다. 하지만 남성에 비해 기초 대사량과 운동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여성의 경우, 하루에 필요한 에너지가 2.5 kWh 정도라서 그렇게 똑같이 먹고살았다간 살이 찔 수밖에 없다. 몸매 관리를 원한다면 적어도 두 끼 정도는 밥 없이 라면만 먹어야 한다. 만약 세 끼 모두를 라면에 밥 말아 먹은 여성이 0.5 kWh만큼의 에너지를 운동으로 소비할라 치면, 자그마치 백두산 천지를 한 번 찍고 내려와야 겨우 본전이다. 모악산이라면 네 번은 올라가야 하겠다. 만약 라면에 계란 푼 기억이 있다면, 신발끈 풀지 말고 바로 뒤로 돌아 한 번 더 올라가자.

운동으로 살빼기가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사는 중력이 자연에서 아주 약한 힘이기 때문이다. 쉽게 예를 들어 알아보자. 지방 1㎏이 가지는 에너지는 대략 10kWh 정도인데 휘발유 1리터의 에너지와 비슷하다. 이 에너지는 백두산 천지에서 던진 1톤짜리 바위가 하늘을 날아서 그대로 바닥에 떨어질 때 방출하는 에너지보다도 많다. 또 10톤짜리 트럭이 시속 100km로 달려와 정면으로 충돌했을 때 받는 충격 에너지와 비슷하다. 음식물이나 석유화합물에 들어 있는 화학에너지의 원천인 전기력이 우리 주변의 중력에 비해 천 배 이상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몸무게 60㎏인 여성이 숫제 등산만으로 지방 1㎏을 빼려면 백두산을 적어도 20번 정도는 오르내려야 한다. 살을 빼려면 운동도 중요하지만, 음식 조절이 우선이라는 얘기가 되겠다.

또 1 kWh의 전기로 핸드폰 배터리를 대략 100번 정도 충전할 수 있다. 현재 가정용 누진 요금체계에서 가장 비싼 요금을 적용하더라도 배터리 한 번 충전하는데 7원 정도다. 상업용 일반 전기라면 1원 안팎이다. 따라서 손님들 배터리 충전하는 모습에 가슴 졸이시는 자영업 사장님들 전기료 걱정은 기우다. 배터리 한 번 충전하는데 2천원씩 받는 편의점주의 이윤은 1,999원이 맞다.

요즘 태양광으로 발전한 전기 1kWh의 시세가 200원 언저리다. 집에서 먹는 라면 하나와 찬밥 한 공기 원가를 1,000원으로 본다면, 가장 비싸다는 태양광 전기 시세조차도 먹거리에 비해 매우 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인 가족이 매 끼니를 이렇게 최저 생계 수준으로 먹고사는데도 한 달에 360,000원이 드는 만면에, 거의 비슷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전기 요금은 55,000원 정도이다. 이것은 우리가 다른 것들에 비해 에너지의 가격이 매우 저렴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이 된다. 라면을 예로 들어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에너지 측면만을 고려한다면, 석유를 비롯한 전기 등의 에너지가 다른 자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척 싸게 공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달리 해석하면, 중공업과 석유화학 업종의 경쟁력이 농수산업과 축산업 등 먹거리 산업의 그것에 비해 월등히 우수하다는 얘기도 되겠다. 요즘 식당에서 한우 소고기 1인분에 소주 한잔 걸치면 한 달 전기요금이 바로 나간다. 농수축산업 등 1차 산업의 보호에 앞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혀 새로운 시각의 강력한 정책의 시행이 필요하다는 필자의 평소 지론의 배경이 이러하기도 하다. 허약한 유리 경쟁력으로 스스로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김종일<전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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