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조의 리얼리즘을 개척한 신시절가조
현대시조의 리얼리즘을 개척한 신시절가조
  • 김동수
  • 승인 2016.09.08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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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12. 정휘립(鄭輝立: 1955-) -

  전북 전주 출생으로 전북대 영어영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1992년 <<자유뮨학>>과 1993년《조선일보》, 1994년《서울신문》,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연이어 당선되면서 2001년 《시조시학》에 문학평론이 다시 당선됨. 시집 『뒤틀린 굴렁쇠 되어』출간. 2002년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한국미래문화상(문학) 등을 수상, 전북대학교 영어영문과 출강과 <<시조시학>> 편집위원, <<미당문학>> 편집장을 맡으며 율격과 제재의 다양성 속에서 전통시조의 벽을 넘는 신서정의 현대 시조 쓰기에 심혈을 기우리고 있다.

시(詩)여, 읽을 수도 안 읽을 수도 없는, 지지리도 잘난, 시여, 그대는 왜 그토록 많은 헛소리를 잔뜩 들고 있나뇨

주둥이 가는 어깨 허리춤 엷은 등판 두 손모가지에 물로 이고 지고 메고 얹고 차고 끼고 또 그것도 모자라 윗도리 아랫도리 주머니란 호주머니 뒷주머니 속주머니 윗주머니 동전주머니 조끼주머니 속바지주머니까지 가득 잔뜩 철렁철렁 채워 넣고 울룩불룩 뒤뚱뒤뚱거리면서도 꽉 쓰러져 엎어질 줄 모르나뇨

황당한 네 배포에 깔려 내 쥐포 될까 하나니

-<시 통신 1호-만횡청류를 위한 따라지 산조 1> 전문

초·중장이 평시조의 율격에서 벗어나 길어진 사설시조로서 무분별하게 양산되고 있는 저간의 시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익살스레 풍자, 사설시조의 묘미를 그대로 살리고 있다. ‘시(詩)여, 읽을 수도 안 읽을 수도 없는, 지지리도 잘난, 시여, 그대는 왜 그토록 많은 헛소리를 잔뜩 들고 있나뇨’라고 초장부터 시와, 시인, 그리고 어찌보면 자신에 대한 비판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풍자와 해학을 충분히 잘 살린 시에 대한 비판이고 애정이다. 그것은 정(定), 반(反)의 과정을 거친 후에 얻게 되는 합(合)의 변증법은 시인이 바라는 시의 참모습이기 때문이다.’ (김민정)

서로가만나적도만날날도마무하되
물과불사이에서삼인칭은될수없네
그대는반면(反面)이면서못난나의반면(半面)인걸

허와실다지지말자, 저광야?가지
맞물리는흙한줌에고이섞어들어야
뒤틀린굴렁쇠나마굴러갈수있으리니-

- <‘98 뒤틀린굴렁쇠 되어> 일부, 1998

뒤틀린 굴렁쇠, 그것은 다함이 없는 시시포스의 바윗덩어리처럼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고 숙명, 아니 전도된 가치관과 사회상에 대한 은유이자 상징이다. 하지만 그걸 끝내 감싸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화자의 고독한 내면이기도 하다.

이제 떠나도 좋다, 벗이여, 철문 열고서
삭발머리 우글거리는 신고(辛苦)의 독방들 지나
기둥을 두 팔로 밀며 쭉죽 뻗는 빛이 되라.

- 중략-

부셔도 눈을 감지마라, 날개 짓 연습하며
침묵의 몸뚱이를 안고 선 저 종루 위로
결박된 신음소리 털고, 휙, 휙, 튀어 오르라

-< 종소리 별사.1> 일부, 1993

갇혀 있는 독방의 ‘철문을 열고’ 훌훌 날아가고 싶은 종(鐘)의 비상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그리하여 ‘벌건 상처에서’ ‘결박된 신음소리를 털고’ ‘깃털들이 돋아 -튀오 오르라’고 한다. 아직 날고 싶어도 날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는 종 앞에서, 세상으로 날아가 온누리에 울려 퍼지기를 고대하는 화자의 실존 인식, 아니 현실탈출 의지가 투영된 시조가 아닌가 한다.

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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