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열자… 15년만에 나타난 콜레라 단상
호열자… 15년만에 나타난 콜레라 단상
  • 김형준
  • 승인 2016.08.25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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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학의 기념비적인 대하소설 박경리의 토지를 보면 ‘호열자’라는 괴질이 돌아 만석군 최 참판댁 일가 대부분이 병에 들어 죽고 몰락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재산을 노리고 음모를 꾸미던 최 참판댁의 먼 친척인 조중구일가는 ‘호열자’가 동네에 유행하자 하늘이 준 기회라며 음식만 익혀 먹으면 자신들은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을 장담하고 결국 살아남아 질병으로 몰락한 집안의 재산을 가로챈다. 종종 사극 등을 보면 괴질이 돌아 많은 백성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데 이는 대부분 ‘호열자’로 불리던 콜레라를 의미한다. 실제 역사기록을 살펴보면 콜레라는 조선시대 한 번에 1,000명이 넘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우리나라에 콜레라가 대유행한 시기(1817~1824년)인 1821년 평안감사 김이교가 설사 및 구토를 동반하는 병을 앓아 사망하였고 평양에서만 10일동안 1,000여명이 사망했다는 최초의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사람들은 설사, 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콜레라에 대해 질병을 알 수 없는 괴이한 병이라는 뜻에서 ‘괴질’ 혹은 ‘호열자’라고 불렀다.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1500년대 한 포르투갈 탐험가의 저서 ‘인도의 전설’에서 콜레라에 대한 첫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인도 캘리컷 지역에 있던 군대에서 심한 구토, 설사 및 복통이 급격하게 나타나는 풍토병이 유행해 2만여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다. 이후 콜레라는 7번의 세계적인 대유행을 걸쳐 세계 곳곳으로 퍼지게 되는데 처음에는 강한 전염력으로 공기 감염으로 오인되었다가 나중에서야 오염된 물과 음식 등을 통해 전염되는 수인성 질환임이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양대 전란을 거치면서 유입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150여명의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마지막으로 국내 감염자는 없었고 간혹 해외 여행자에서 해외 감염에 의한 환자만 간간이 보고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지난 15년간 국내 발병 사례가 없었는데 올해 15년 만에 두 명의 환자 발생한 것이다. 너무 오래간만에 발병이라 처음 환자는 진단한 병원에서도 믿기지 않아 콜레라 확진 검사를 몇 차례 반복하기도 했다고 한다. 콜레라(cholera)는 수인성 전염병이며, 콜레라균(Vibrio cholerae)이 일으킨다. 감염되면 주증상은 심한 설사와 구토 등 탈수증세를 보인 데 심한 탈수 증세로 인해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콜레라는 아주 많은 설사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설사는 쌀뜨물같이 나오는데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많은 설사를 한다. 구토가 동반되기도 하지만 복통이나 발열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콜레라의 주된 증상인 설사와 이에 따른 탈수증상은 국내 의료수준에서는 치료가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기 때문에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과거 수분과 전해질을 보충해주는 생리식염수, 링겔 같은 간단한 수액이나 항생제가 없던 시대에는 탈수 증상을 속수무책으로 막지 못해 많은 사망자를 낳았으나 최근에는 수액요법과 항생제의 복용으로 쉽게 치료할 수 있어 사망률은 1% 미만인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1종 법정 전염병으로 지정되어 환자 발생 시 보건당국이 엄격하게 방역을 하게 되어 있다.

 드물게는 환자의 가변물(대변)에 직접 접촉한 경우 감염되기는 하나 대부분 수인성 전염으로 주로 오염된 물과 음식물을 통해 ‘콜레라균’(Vibrio cholerae)이 사람 장 안으로 들어와 감염되는 전염병이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는 전국적인 대유행이 일어나기 힘들다고 진단한다. 그 이유로는 콜레라의 전염력이 강하지만, 강력한 전파경로인 오염된 물에 의한 감염 확산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 제시됐다. 최초 환자와 추가 감염자의 감염경로와 연관성 등이 확인돼야 하겠지만, 지역에서 익히지 않은 해산물 섭취로 인한 감염이 추정되고 있는 만큼 콜레라가 전국적으로 퍼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콜레라가 ‘후진국병’으로 불리며 개발도상국에서 콜레라가 유행하는 주된 이유는 상하수도 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콜레라균이 물을 통해 급속하게 퍼져나가기 때문이며 국내에서 콜레라 환자가 추가로 나올 수는 있지만, 공중위생시설이 갖춰진 국내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할 가능성은 사실상 낮다고 보건당국은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유난히 더운 날씨 때문에 콜레라가 15년 만에 발생한 것으로 보이나 최근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등의 신종 전염병에 놀란 마음에 이번 콜레라의 발병이 조금은 씁쓸한 기분인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보건당국의 신속하고 정확한 대처로 집단 유행하는 일이 없길 기대해 본다.

 김형준<신세계효병원 진료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부안군 정신건강증진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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