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그 비워두기에 대해
자유, 그 비워두기에 대해
  • 이신후
  • 승인 2016.08.1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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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에는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인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가족 성당이 있다. 이 건물은 아직도 완공되지 못한 가우디의 건축물로, 사후 100주년인 2026년에서야 완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가우디가 죽은 이후 많은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공사에 참여하고 있으며 건설에 필요한 자금은 모두 기부 또는 입장료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134년의 세월을 느낄 수 있는 건축물은 미완성이라 부르기 어렵고 시대와 함께 살아내는 중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현존하는 건축물 자체가, 가우디가 표현하고자 한 전부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시간이 덧칠해진 그의 건축물이 완성되는 최종 모습은 아마, 그가 생각했던 모습보다 더 아름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가우디 역시 “슬프게도 내 손으로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완성시키지 못할 것이다. 내 뒤를 이어서 완성시킬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교회는 장엄한 건축물로 탄생하리라.”라고 예견했다.

 농부들 또한 한해 농사에 대한 수확량에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에는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성장을 돋우며, 가을에서야 비로소 곡식을 거둔다. 그리고 겨울에는 한 해 쉼 없이 애썼던 땅을 쉬게 하며, 다음 해의 농사를 기약한다. 우리는 이렇듯 어느 정도의 책무를 이행하고, 후일을 기다리는 것에 조바심을 내지 않아야 하며 더욱더 관대해야 한다.

 가우디는 말했다. 시대와 함께 유능한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남기고 사라졌으나, 그렇게 해서 아름다움은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이처럼 각자가 배당 받은 유한함 속에서 자신이 할당 받은 몫을 마땅히 해내는 것만이 최선의 일일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듯 보이지만 유한한 시간 속에서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하나의 강박관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며, 그것이 스스로를 멍에지는 일이 될 수도, 굴레를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가장 최선의 방법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전념하며, 그 다음 시간과 다음 순번자에게 내어맡기는 일, 그것이 가장 중요한 관건일 수 있다. 출발선을 끊은 주자가 자신이 달려야하는 지점까지 숨차게 달려왔다면, 다음 바톤 터치를 해야 하는 주자에 대한 믿음으로, 순순한 마음으로 바톤을 건네야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 또한 그러하다. 그 시작과 끝이 한 점에서 시작되어 끝날지, 쉼표가 되어 지속될지는 쉽게 단정지을 수 없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거리처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자리를 비워내는 일이다. 이렇듯 세상을 살아내는 일, 집을 짓는 일, 정책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일,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일, 그 모든 것은 커다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커다란 그림이 끝내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우선 그 나머지 부분을 비워두는 일은 바탕을 그리는 일과 다름없다. 그 스케치 위의 그림이 수채화로 채색될지, 유화로 덧칠하게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수묵화의 여백처럼 누군가 채울 곳을 비워두는 것이 곧 여백의 미학이자 공존이며, 자신만의 자유가 담겨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이신후 / 전라북도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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