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와 공공조달
전통주와 공공조달
  • 임중식
  • 승인 2016.08.09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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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의 황진이주와 주몽복분자주가 지난 7월부터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에 등록되어 정부조달전통주로 판매되고 있다. 그런데 ‘왜 조달청에서 전통주를?’이라며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조달청이 전통주 판매를 대행하고 있는 이유는 지역 전통주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나라장터’라는 판매통로를 활용하여 공공시장으로 판로를 확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가양주(家釀酒)라는 형태로 양조기술을 발전시켜왔다. 가양주는 오랜 세월동안 가문 대대로 이어 내려온 고유한 비법으로 집에서 담근 술을 말한다. 지역과 가문, 재료와 방법에 따라 저마다 고유의 맛과 향을 내는 덕분에 명가명주(名家銘酒)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조선시대 문헌에 등장하는 것만 400여 종에 이른다 하니, 그야말로 선조들의 삶,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시절, 주세령(酒稅令)이 시행되어 술 제조에 대한 단속과 함께 모든 주류가 약주, 탁주, 소주로 획일화·규격화됨에 따라 각 지방, 집안마다 번성했던 가양주는 암흑기를 맞았다. 광복 이후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식량난으로 인해 단속은 계속되었고, 1965년에는 급기야 양곡관리법이 제정되면서, 쌀을 이용한 술 제조가 전면 금지되고, 수입 주정을 사용한 희석식 소주가 대중화됨에 따라 가양주는 역사 속으로 급격히 사라져갔다. 밀주(密酒)의 방식으로 간신히 명맥만 유지할 뿐이었다.

 이후, 양곡 사정의 호전과 함께,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자는 명목 아래, 전통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술을 전통주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잃어버린 우리의 술을 살리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하지만 정부의 규제, 소비자들의 낮은 인식과 함께 와인 등 외국산 주류의 수입이 해마다 늘면서 9조 1천억원에 이르는 국내 주류시장 규모에서 전통주의 비중은 0.5%에 불과할 만큼 존재감은 미비하다.

 우리 농산물로 만드는 전통주는 인구의 감소와 고령화, 수입농산물 개방 등에 따른 농촌의 경쟁력 약화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명주들 대부분이 자국산 지역농산물을 주원료로 사용하여 농업과 지역의 발전을 이끌었는데, 하물며 우리라고 다르겠는가? 양조장들이 지역에 뿌리를 둔 만큼 지역 농가의 소득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의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정부도 농업의 6차 산업화를 국정과제로 정하고, 전통주 산업의 부흥을 위해 규제완화, 판매망 확대 등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의 일환으로 조달청은 전통주를 창조산업으로 재인식하고 조달물자로 발굴하고 있다. 올해 초 전통주의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판매가 가능하게끔 국세청 고시가 개정되면서 적극적으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전통주 판매 활성화를 지원하기 위한 업무협약도 체결하였다. 전통식품산업 육성을 담당하는 농림축산식품부와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을 운영하는 조달청이 협업하여 전통주의 판로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조달청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 국내·외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은 전통주를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등록 후 판매하고 있으며, 공공기관에서도 적극 구매하도록 조달수수료를 면제하고 있다. 앞으로도 농림축산식품부 및 관련 협회 등과 협업하여 공공기관에 전통주를 홍보하고 특별판매 행사를 마련하는 등 다양한 판로를 개척할 예정이다.

 맛의 고장답게 도내에도 이름난 전통주들이 많다. 황진이주와 주몽복분자주 외에도 이강주, 죽력고, 송화백일주, 복분자주 등 전북지방조달청은 도내의 우수한 전통주를 조달물자로 계속해서 발굴할 계획이다. 나라장터는 5만여 공공기관이 이용하고 있어, 공공판로 확대를 통한 전통주의 대중화와 이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해 볼만하다.

 전통주는 우리의 역사와 선조들의 얼이 담겨있는 훌륭한 문화유산이자, 새로운 고부가가치 영역이다. 전통주가 지역경제를 견인하고 창조경제의 신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지자체 등 공공기관들의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다이아몬드도 원석을 갈고 다듬어야 아름다운 보석이 되는 것처럼, 전통주도 우리의 애정과 관심이 있어야 비로소 그 빛을 발할 것이다. 선조들의 희로애락과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전통주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그날을 기대해본다.

 임중식<전북지방조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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