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성, 역사유적+문화예술 ‘거대한 힘’ 1억명의 발길 이끌다
프라하성, 역사유적+문화예술 ‘거대한 힘’ 1억명의 발길 이끌다
  • 한성천 기자
  • 승인 2016.08.08 1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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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부성 名品만들기 <4>

프라하 야경
 1억 명. 어느 나라 국민 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연간 체코 수도 프라하(Praha)를 다녀간 관광객 수다. 1000만 명 관광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전주시와 비교하면 10배에 달한다. 우리나라 인구 전체가 1년에 두 번씩 체코 프라하를 다녀간다는 단순 계산이 나온다. ‘사랑의 도시’·‘연인의 도시’, 그리고 ‘음악의 도시’ 등 프라하는 수많은 수식어를 도시명 앞에 달고 있다. 역사유적과 문화예술의 융합으로 지구촌 가족들을 유혹해 끌어당기고 있다.

 기자는 지구촌 가족들이 ‘왜, 프라하를 가고 싶어할까?’란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체코를 찾았다. 프라하를 비롯해 체스키 크롬로프, 브르노 등 도시별로 관계자를 만나 설명을 들었다. 현장 유적지는 물론 골목까지 구석구석을 걷고 보았다. ‘무엇이 다르고, 배울 점은 무엇일까’란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다. 취재계획에 없던 독일의 드레스덴까지 달렸다. 그리고 관찰했다. 짧은 취재일정이었지만 땀 흘려 걷고 취재한 결과 인문학과 지역경제학, (건축)도시공학을 공부한 기자가 도출해낸 도시별 결론은 이렇다.

 ‘프라하=시대별 공간짜기’, ‘브르노=역사현장 시민 품으로’, ‘체스키 크롬로프=지역민과 라이프 상생’, 그리고 ‘독일 드레스덴=복원을 통한 역사재창조’가 그것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몇 회에 걸쳐 풀어본다. <편집자 주> 


 세계 제1의 관광도시 체코 프라하는 1938년 ‘문화유적관리법안’을 제정해 프라하 관리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프라하의 심장인 프라하성을 찾는 관광객은 연간 2500만 명 정도다. 1억 명의 4분의 1 수준이다. 비싼 입장료 탓이다. 나머지 관광객들은 프라하성과 카를교를 중심으로 한 소지구와 구시가, 그리고 신시가 등에 분산되어 있는 각종 문화유적과 맥주투어를 목적으로 하는 관광객들이다.

 이런 프라하도 부침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체코는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 제국시대에 주변의 정세에 따라 변했다. 의지와는 달리 시류의 파고에 떠밀려 다닌 선박과 같았다. 그러다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로 독립했다. 2차 세계대전 후에는 1948년 2월 사건과 1968년 1월의 ‘프라하의 봄’으로 부르는 자유화운동이 소련 등 바르샤바조약군(軍)의 침입으로 무참히 짓밟히기도 했다. 그리고 1993년 1월 1일 또다시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나라가 쪼개지는 비운을 겪었다.

 하지만, 현재 프라하의 모습은 낭만의 도시·사랑의 도시·예술의 도시로 지구촌 가족을 매료시키고 있다. 체코인과 프라하 시민들은 부침의 역사에도 굴하지 않고 역사유적과 음악예술을 소중히 가꿔왔다. 심지어 문화유적을 보존하고 지키기 위해 최대한 전쟁을 피했다. 이에 대한 해석은 분명하게 나뉜다. 자국의 명예를 위해 죽음을 불사르지 못하고 권력에 아부했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하지만 문화유적과 국민의 생명보존을 위해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포기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상존하다. 어찌됐던 오늘날 프라하는 전쟁을 피한 결과 후손들은 그 누구보다 더 사랑하고, 더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프라하 구 시가 광장과 얀 후스 동상

 #1. 공간마다 시대문화를 담다

 프라하는 도시공간을 크게 3곳으로 구분할 수 있다. 몰다우강에 있는 카를교를 경계로 프라하성(城)이 있는 ‘역사소지구’, 도시역사의 숨결을 온전히 담고 있는 ‘구(舊)시가’, 그리고 새롭게 현대화를 이루고 있는 ‘신(新)시가’. 이렇듯 세 곳의 공간은 뚜렷하게 차별된다. 소지구와 구시가의 경계는 ‘몰다우강’이고, 구시가와 신시가의 경계는 ‘바츨라프광장’이다.

 먼저, 프라하성이 있는 ‘역사소지구’는 5~6세기 슬라브인이 들어와 9세기 말 지금의 프라하성을 축조했다. 현재 대통령 집무실과 대통령궁으로 활용되고 있는 프라하성은 시대와 종교, 문화에 따라 시대별 건축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건축박물관인 셈이다. 10세기 전후 비잔틴 건축을 비롯해 11~12세기 로마네스크 건축, 12~15세기 고딕 건축, 15~16세기 르네상스 건축, 16~17세기 바로크 건축, 18세기말부터 현재에 이르는 근대·현대 건축까지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여기에 ‘성 비투스성당’을 비롯해 예술의 자유를 표방한 ‘존레논의 벽’ 등 다양한 문화관광콘텐츠를 접목시켜 왔다.

 ‘구시가’는 11세기 들어 구시가광장에서 교역이 이뤄지며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12세기에는 중부유럽 최대 도시로 발전했다. 그리고 14세기 카렐 4세가 왕위에 오른 후 프라하는 최고의 전성기를 이뤘다. 지금의 프라하는 카렐 4세 집정때 모두 갖췄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몰다우강을 경계로 홀스타운 브릿지타워, 국립극장, 베들레헴채플, 루돌피늄 콘서트홀, 유대인지구, 구시청사와 천문시계탑, 틴 교회, 성 니콜라스성당, 화약탑, 후스 동상, 하벨 전통시장 등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어당길 수 있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접목시켰다.

 프라하 신시가는 카렐 4세가 계획적으로 만들었다. 지금으로 보면 신시가지 개발인 셈이다. 하지만, 신시가를 독립개발하지 않았다. 소지구-구시가-신시가를 밸트화했다. 자연스럽게 인구유입을 위해 바츨라프광장을 조성하고 끝에 국립박물관을 건축했다. 흐름의 동선을 만들었다. 프라하 시청사도 신시가로 옮겼다.

프라하성 정문.
 #2. 25년만에 일군 대역사

 프라하가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성장한 요인을 세 가지만 꼽는다면 무엇일까.

 첫째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프라하가 등재된 것이다. 199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 전까지는 동유럽 체코의 수도에 머물렀다. 그러나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프라하가 이름을 올려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 세계인들이 찾기 시작했다. 여기에 인터넷과 SNS도 한 몫 했다. 프라하의 절경을 담은 사진과 여행소식이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것도 ‘낭만의 도시’, ‘사랑의 도시’란 애칭까지 붙어 세계인들을 메료시켰다. 현재도 매료당한 지구촌 가족들이 프라하행(行)을 결행하고 있다.

 둘째는, 저렴한 초고급 맥주와 물가다. 여행자들에게 비용은 중요하다. 저렴한 물가, 고품격 문화유적과 음악예술. 오늘날 1억 명의 여행자들이 프라하를 찾는 이유다. 

 셋째는, 최고의 음악예술도시다. 낭만·사랑·예술은 프라하 도시브랜드가 됐다. 한 나라에 하나도 가지기 힘들 법한 세계적인 극장이 프라하에만 자그마치 다섯 곳이나 된다. 오베츠니둠, 루돌피눔, 프라하국립극장, 에스타테스극장, 프라하국립오페라하우스. 그 중 루돌피눔은 체코 제1의 악단인 체코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홈그라운드다.

 이렇듯 프라하는 오렌지색으로 뒤덮힌 도시경관부터 도시 곳곳에 담겨 있는 문화유산들, 그리고 예술을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프라하시민들의 열정이 25년 만에 ‘세계 제1의 관광도시, 프라하’란 대역사를 일궈낸 것이다. 

 #3. 요셉 슈틀리스(Jesef stulc) ICOMOS(유네스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체코 대표

 - 최고의 자산은 역사유적이다

 체코의 문화유산 관리와 관광진흥책은 하나처럼 돌아간다.

 현재 체코는 130개 도시가 있다. 각 도시마다 수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정부는 각종 문화유산을 종합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90% 이상의 문화유산이 개인소유다. 문화유산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지자체에서 조례를 제정해 문화유산이 훼손되는 것을 철저하게 예방하고 있다.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축물 등에 대해 변형을 주려면 조례에 규정된 계획서를 제출해 행정기관으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가능하다. 그것도 원형을 지키는 전제하에서다.

 정부 관광청과 프라하 시정부는 국제관광마케팅 방법으로 문화예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제컨퍼런스 유치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 밖에도, 프라하는 밀려드는 관광객들을 수용하기 위해 숙박, 음식업소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들로부터 받은 관광세는 다시 문화유적 및 관광 관련 예산으로 집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반 가정도 관광객을 유치하는 레지던스가 활발하게 확대되고 있다. 한국의 민박과 팬션 개념이다. 숙박업소의 다변화로 유럽 관광객들은 이른 바 ‘프라하시민으로 1주일 생활하기’ 등 보다 자유로운 관광형태를 접목하고 있다. 여기에 관광객 유치를 위해 세계 각국의 여행사를 대상으로 관광상품 개발 및 마케팅을 연중 실시하고 있다.

 역사문화관광은 정부 차원의 정책개발과 예산지원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토대로 지자체들이 역사유산을 잘 보존하고 지역 특화형 현대문화와 융합시켜 관광객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나갈 때 성공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글/사진=체코 프라하 한성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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