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
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
  • 임희종
  • 승인 2016.08.04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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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가 나풀나풀 춤을 추며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분주하게 옮겨가고 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여유 있어 보여 참 예쁘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나비는 꿀을 따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상대방인 꽃에게도 유익하다. 수분을 도와주어 결국 열매를 맺게 하기 때문이다. 쌍방 서로에게 유익함을 준다는 점에서 보면 독서토론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책에 대한 자기 생각을 얘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상대방의 생각을 듣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이 다른 이와 생각이 맞부딪쳐 깨닫는 공감은 혼자 읽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즐거움과는 차원이 다른 환희다. 

독서는 비슷한 사람끼리의 읽고 토론하는 것도 좋지만, 전혀 다른 환경의 사람들이나 전공분야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독서와 토론은 매우 생산적이다. 하나의 정보를 다각적인 시선으로 보고 다양한 관점을 이야기할 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나의 견해만이 옳다는 아집의 늪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어갈 수 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학교 현장에서 경험이 풍부한 교사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한 학생의 사제동행 독서는 흥미진진하기만 하다.

우리 학교 사제동행 독서동아리 ‘호모쿵푸스’는 우수 자율동아리로 8년째 맥을 잇고 있다. 도서관의 한 선생님의 열정과 노력으로 일군 ‘호모쿵푸스’는 행복한 책읽기로 시작하였다. 점심시간 시사토론, 토요 독서토론, 초록강연, 김해인문학대회 및 전북인문학대회 참가 등을 통해 ‘앎에 대한 열정으로 몸을 단련하고 일상을 바꾸어가는 존재’라는 ‘호모쿵푸스’ 본래의 의미를 살리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과 교사가 충분히 협의하여 책을 선정한 다음, 책을 읽고 질문거리를 3가지 이상 준비한다. 한 사람이 질문을 던지면 원탁의 학생들이 자신의 견해를 얘기하면서 자유스럽게 토론한다. 이때 지도교사는 토론방향을 잡아주고 요약 정리하는 책무만 감당한다. 자신이 가장 정확하게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다보면 꼭 그렇게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이와 같이 한 권의 책 내용이 여러 사람의 견해로 확장해가면서 더 큰 배움이 일어난다. 물론 처음부터 질문거리를 만들어내는 일이 학생들에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초보단계에서는 모르는 지식정보 물음이 주를 이루다가, 요약능력이 생기고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독서력이 생긴 다음에는 필자와 다른 견해까지 토론하게 되었다.

전북환경운동연합 주최의 초록강연에 함께 갔을 때의 에피소드이다. 강사님의 강의가 끝나고 질문을 하라고 했을 때, 일반시민들은 조용하기만 한데 우리 학생들은 강연자의 책을 다 읽고 갔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돌하게 소소한 질문에서부터 핵심 질문까지 마구 쏟아냈다. 그러는 가운데 강의 때 충분하지 못했던 내용들이 구체화되기도 하여 모든 사람에게 유익함을 주었다.

다음은 김해 인문학대회에 참가했던 학생의 후일담이다.

이제 와 다시 회상해보니 만났던 사람들, 같이 했던 활동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며 기분이 좋아진다. 활동을 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것은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도 깊은 이야기가 이루어졌다는 점이었고, 또 내가 그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내 의견을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 생각이 깊지 못해 주제와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가끔은 분위기에 압도되어 한마디도 못하고 앉아만 있었을 때도 있었지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서 내 의견을 보충하기도 하였다. 또한 평소에 생각해보지 못한, 그리고 어쩌면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 여러 가지 주제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어서 무척이나 좋았다. 특히 과학-생물 계열 책이었던 ‘불량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를 읽으며 인문계열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부분을 다루게 되어 좋은 경험이 되었다. 비경쟁토론이라는 점도 마음에 쏙 들었다. 이기고 지는 찬반식의 경쟁토론이 아니라 모두의 의견을 존중하고 보충해주는 이 방식을 통해서 모두가 이 토론의 승자가 되고 모두 각자의 생각이 넓어지는 것 같았다.(전재혁 학생의 글 일부, 현재 서울대 1학년 재학 중)

그렇다. 학생들이 성장하는 것은 교실 수업만이 아니다. 교사와 학생의 가르침과 배움은 학교 밖 새로운 환경에서의 만남을 통해 더 크게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이때 깨달음은 평생의 지침이 되기도 하고, 창의적 인간이 된다. 스승이 없는 삭막한 사회라 탓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이런 사제동행동아리들이 우후죽순처럼 활성화된다면 ‘진리의 공동 추구’를 하는 멋진 스승과 제자가 많이 나오지 않겠는가.

임 희 종(전주신흥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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