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
  • 홍용웅
  • 승인 2016.07.2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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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 속에서지만 인류사상 가장 불행한 인간은 오이디푸스 왕이 아닐까 싶다. 저 옛날 BC 425년 경 아테네 출신 소포클레스가 쓴 희곡 <오이디푸스 왕>은 천지창조 이래 최대 비극을 그리고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표현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바로 그 사람의 패륜적 이야기를 말이다.

 자기가 낸 수수께끼를 즉석에서 풀지 못하면 과객을 잡아먹는 못된 버릇을 지닌 스핑크스를 처치한 위대한 자가 오이디푸스다. ‘아침엔 네 발, 낮엔 두 발, 저녁엔 세 발로 다니는 동물은?’이라는 일종의 난센스 퀴즈를 단박에 맞혀 절망한 스핑크스를 절벽에서 추락사시킨다.

 이 공훈으로 오이디푸스는 얼마 전 숲에서 불한당에게 살해된 테베왕 라이오스의 왕위를 잇고, 왕비 이오카스테를 부인으로 맞는다. 여기까진 질시어린 행운의 연속이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묻혀 있던 오이디푸스의 과거가 돌연 밝혀지면서 불행의 나락이 그를 삼키게 된다. 최근 자신과 싸움질하다 죽은 사람이 바로 전왕 라이오스로, 사실인즉 갓난아기 시절 자신을 유기한 친부였던 것이다. 친모 이오카스테와 결혼해서 얻은 2남 2녀는 결국 자식 겸 형제니 운명의 장난이 참으로 얄궂다. 진상을 알게 된 이오카스테는 자진하고, 존속살해와 근친상간의 진실을 차마 마주하기 두려운 오이디푸스는 두 눈을 도려내 맹인이 되어 세상을 유랑한다.

 현실에서 이 같은 막장 드라마가 가능할까마는, 자신의 기구한 운명의 진실을 끝까지 파헤치는 탐구의지와 무한절망 속에서도 맹인으로나마 살아남는 생명의지가 관전 포인트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당신은 행복한가?’라고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대뜸 묻는다면 십중팔구 시원한 답을 선뜻 내놓지 못할 것이다. 당연하다.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 자체가 행불행을 100% 결정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불행은 사건보다는 사고(思考)에서 연유한다. 우리가 행복을 거창한 무엇으로 여기기에 그 진면목을 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만으로도 행복감을 증진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행복을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것을 너무 적극적으로 추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유의 다과를 행복의 척도로 여기면 행복은 파랑새처럼 날아가 버린다고 현자들은 말한다. 요즘 세태에선 이른바 ‘루저’(패자)들의 변명으로 치부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수천 년 묵은 지혜의 말씀들이 이 점을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다. 아마도 나 같은 범인은 죽을 때나 이 진리를 깨닫겠지만…. 소유보다 존재를 추구하라는 에리히 프롬의 충고도 같은 맥이리라.

 루소의 <에밀> 어느 구석에선가 본 ‘행복은 소극적 개념’이라는 표현이 생각난다. 몽테뉴 수상록에도 “불행을 갖지 않은 것은 많은 행복을 가진 것”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밥 굶지 않고, 큰 빚 없고, 아프지 말고(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양심의 가책 없이 사는 게 행복일지 모른다. 강변 고층아파트, 잘생긴 배우자와 영재 자녀를 모두 갖춘 가정에도 보이지 않는 불행(의 씨앗)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오이디푸스의 불행은 타산지석이다. 모든 이가 크든 작든 제 몫의 행복을 지니고 있을지니 미루거나 남부러워하거나 눈치 보지 말고, 지금 이곳의 실존을 십분 누릴 일이다. “카르페 디엠, 현재를 잡아라, 내일이라는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 2천 년 전 로마시인 호라티우스의 일갈을 여름휴가를 앞둔 당신께 전하고 싶다.

 홍용웅<전북경제통상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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