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기 위한 노력을…
행복하기 위한 노력을…
  • 오종남
  • 승인 2016.07.20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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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중학교에 진학하던 1964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 수준이었다. 한 사람이 1년 365일을 먹고살 돈이 고작 100달러일 정도로 가난했다. 그런 우리나라의 경제가 1977년 1천달러, 1995년 1만달러, 2006년에는 2만달러 수준을 넘을 정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더욱이 2015년에는 2만8천달러 수준이 되었으니 반세기 만에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룬 셈이다. 경제가 발전한 만큼 우리들이 느끼는 삶의 만족 또한 그에 비례해서 나아졌으면 좋으련만 과연 그런가?

 현실은 어쩌면 그 반대로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하루 38명이 자살을 선택하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의 국가가 되었다. 특히 압도적 1위인 노인 자살률을 보면 무엇을 위한 경제발전이었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오늘의 한국이 있게 한 주역이 바로 그 어르신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는 경제가 발전하면 국민들의 행복도 그에 비례해서 나아질 것이라는 전제하에 경제발전에 매진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경제가 발전해서 나라 전체의 소득이 늘었다고 해도 막상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느끼는 행복은 그에 비례해서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

 197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이스털린 교수는 경제학에서 행복이라는 주제를 다룬 첫 논문 “경제 성장이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는가?”를 발표했다. 그의 결론은 “한 나라의 경제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수준에 도달하면 국민의 행복은 경제성장에 꼭 비례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살기가 어려울 때는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직장에서 연장 근무나 휴일 근무를 기꺼이 하지만 소득이 어느 수준에 도달하고 나면 그때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이치와 같다고 하겠다. 게다가 나의 나아진 모습만을 관찰하는 게 아니라 더 빠르게 나아진 옆 사람을 관찰하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또한 행복지수를 낮추는 원인이 될 것이고 이는 곧 격차 문제로 연결된다. 소득 격차 문제도 심각하지만, 빈부 격차 문제는 더 심각하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컬럼비아대학의 스티글리츠 교수는 상위 1%가 매년 25%의 소득을 가져가는가 하면, 이들이 부의 40%를 소유하고 있는 미국 사회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삶의 만족도는 객관적으로 측정하기가 참 어려운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각자 느끼는 만족도는 옆에서 남이 보는 만족도와 꼭 같다고 할 수도 없다. 

 필자는 행복이란 개인이 각자 느끼는 주관적인 만족도라는 전제하에 행복지수 공식을 만들어 보았다. 즉, 행복지수는 바라는 것에 비해서 얼마나 성취했는가의 비율이라는 것이다. (성취한 것/바라는 것) 이 공식에 따르면 행복지수를 높이는 방법에는 한 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성취하고자 노력하지만, 사실은 더 적게 바라는 방법 또한 더욱 용이한 방법일 수 있다.

 안 가진 것을 세면서 하루를 마감하는 사람과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할까? 똑같은 것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후자가 훨씬 더 행복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것이라 믿는다. 행복도 각자 노력하기에 달렸다고 말할 수 있다. 행복하기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할 것을 제안한다.

 오종남<새만금위원회 민간위원장> 

 약력

 ▲유니세프한국위원회사무총장 ▲IMF상임이사 ▲서울대 과학기술혁신최고과정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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