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 조선!
헬 조선!
  • 김철승
  • 승인 2016.07.1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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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디지털 속어 중 하나가 헬 조선이다. 인터넷 한글사전에서 찾으니 ‘지옥을 뜻하는 ‘hell’과 ‘조선’의 합성어로 대한민국이 살기 어렵고 희망이 없음을 풍자하는 말, 이는 신분사회였던 조선처럼 자산이나 소득수준에 따라 신분이 고착화되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을 반영한 것이다. ‘지옥불 반도’나 ‘망한 민국’도 헬 조선과 비슷한 뜻으로 쓰이고 있다’라고 나온다. 청년 실업자가 넘쳐나는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절망감을 담아낸 신조어이다. 저성장 경제상황과 암울한 미래를 비롯하여 최근 들려오는 여러 가지 국내, 외 소식들을 접하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단어이다. 예전에는 누구나 누리고 거쳤던 인생과정에서 몇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세대라고 한다. 요즘 세대를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삼포세대라 한다. 여기에다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하면 오포세대라 한다니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최근에 시끄러운 교육부 고위공무원의 개, 돼지 막말을 적용하면 정말로 적절하게 한국사회를 표현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쓴웃음과 침묵의 동의를 보냈다. 계층상승이 완전히 두절된 계급사회로의 고착화를 걱정하는 현상의 하나이다. 그렇다 하여도 과연 이 나라가 지옥과 비교될 정도로 힘들고 두렵고 고통스러운 나라인가?

  이야기 하나;얼마 전 세상에서(조사 참여 118개국 중) 가장 안전한 나라로 한국이 뽑혔다(NUMBEO 발표, 2016년). 어느 기구와 단체에서 발표하느냐에 따라 기준이 달라 조금은 차지가 있지만 그래도 한국은 꾸준히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또한 도시별 안전도에서도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대도시들이 상위권에 올라와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면서 강력한 살상 무기의 밀도가 가장 높음에도 말이다. 진정 안전한 나라가 의심스러우면 당장이라도 새벽녘에 신시가지를 방문해 보시길 권한다. 세계 어디에 새벽까지 그렇게 많은 남녀들이 밤새 술 마시고 유흥거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활보할 수 있는 나라가 있겠는가?

  이야기 둘;얼마 전 페이스북에 한 미국교포가 올린 글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이민 갈 때나 지금이나 별 변화 없는 미국에 비해 빠르고 편리하게 발전한 한국을 부러워하는 내용이었다. 빠른 인터넷과 사람들이 모일만한 곳이면 당연히 있는 공공 와이파이, 택배 및 음식배달서비스, 자동차마다 달린 내비게이션과 블랙박스, 무거운 열쇠를 가지고 다닐 필요 없게 하는 전자번호 키, 초등학생들까지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편리하고 경제적인 대중교통 시스템, 적은 비용으로 어느 곳에나 있는 병원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심지어 미국에서는 부자들만 사용하는 비데까지 너무나 편리한 세상을 사는 한국 사람을 부러워했다.

  이야기 셋;한 가난한 흑인 소년이 있었다. 그는 빈민촌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을 부자 백인들이 사는 집들의 쓰레기통을 뒤져서 나오는 음식을 먹고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온 백인 선교사 부인이 이 아이를 불쌍히 여겨 불러다 청소부 일을 시켰다. 그렇지만 흑인 소년이 볼 때 백인 선교사 집에는 청소할 것이 없었다. 자기가 사는 움막에 비해 너무 깨끗했기 때문이다. 흑인 소년은 백인 선교사 집에서 종일 놀다가 집으로 갔다. 물론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얻어먹으면서. 그렇게 며칠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쫓겨나고 말았다. 이 흑인 소년은 자신이 무엇을 잘 못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스티븐 룽구의 예수를 업고 가는 당나귀 중)

  미국 연수 때의 일이다. 9.11테러가 몇 년 지났음에도 뉴욕 시의 중요 역에는 무장 군인이 순찰을 하고 있었고 저녁 6시가 되면 어디가 그 많은 경찰들이 나오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사거리마다 중무장한 경찰들이 순찰 풍경을 연출하였었다. 사실 미국 경찰들의 무장 수준이 위압적이다. 경찰차의 어지러운 경광등만 보아도 심리적으로 제압당하는 느낌이다. 머리를 민 덩치 큰 백인 경찰의 경우에는 말할 것이 없다. 평소에 경찰보기 힘든 우리나라가 범죄율이 가장 낮은 나라라니 의아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도 누구나 범죄로부터 안전하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아마도 범죄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종류와 내용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매일 방송되는 뉴스를 볼 때마다 이 사회가 올바르게 가고 있나 의심될 정도의 잔혹 범죄들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발전한 한국 모습의 이야기를 풀어간 미국 교포는 맨 마지막에 그러나 “만나는 한국 사람마다 힘들어 죽겠다는 사람뿐이다, 행복해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는데 왜 그런지 궁금하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빠르게 변한 나라에 살고 있다. 왠지 더 바쁘게 살아야 만 할 것 같은 세상 속에 있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왜 달리는지 모르고 앞에서 달리니 그저 따라 뛰고 있는 형국이다. 마치 자신이 왜 고용되었는지,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흑인 소년처럼 사는 것은 아닌지? 저성장 시대이다. 예전처럼 뛸 필요가 없어 보인다. 걸으면서 시선을 다른 곳에 두어보자. 흑인 소년의 눈으로가 아닌 백인 선교사의 눈으로 보아야 더러운 것이 보이고 치워야 할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가쁜 숨도 천천히 쉬면서.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세계가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나라이다.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김구). 나라도 똑같지 않을까? ‘헬조선’, 빨리 사전에서 사라져야 할 단어이다.

 김철승<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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