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봄 마중 - 입 안 가득 봄 향기를 머금다
힐링 봄 마중 - 입 안 가득 봄 향기를 머금다
  • 김동수
  • 승인 2016.07.14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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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8. 박순희

모임에서 회장 네 진 안 고향집으로 단합대회를 가기로 했다. 말이 두 귀를 쫑긋 세운 형상의 마이산에선 히-잉하고 힘찬 말 울음소리가 들릴 것 같다. 스쳐가는 풍경들이 흑백의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아직은 속살이 훤히 보인 골짜기들이 등을 맞대고 볕 바라기를 하고 있다. 햇살이 나목들의 은밀한 곳까지 비추고 있어 오동통 물오른 가지가 아련해 보인다. 훼초리 같은 가지에 겨울눈이 오종종 붙어 싹틔우기 위한 숨고르기를 한다. 골짜기마다 어깨동무를 하고 스크럼을 짜고 있는 나무들이 목장의 울타리 같이 키 재기를 하는 게 신기하기만하다. 같은 환경과 토양에서 생장속도가 비슷하겠지만 저들도 상생하기 위해서 키를 맞추며 모진 겨울바람을 이겨내는 생존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무릎을 친다. 점점이 겨울눈을 달고 있는 무수한 나뭇가지가 어우러져 이내 낀 것처럼 아련한 점묘화를 펼쳐 놓았다. 골짜기마다 겨울을 넘긴 나무들의 위대한 동행을 본다. 회장 네 집은 용담호수 언저리에 걸터앉아 있었다. 얼음 풀린 용담호의 물비늘은 까막까치 우짖는 노래에 손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언덕위로 봄의 전령 버들강아지가 빈 화단을 넘겨다보며 솜털 보송보송한 소년의 얼굴로 눈인사를 한다.

  호숫가로 산책을 나갔다. 상류 쪽이라 물 빠진 호수바닥까지 자박자박 걸어갔더니 유리조각 같은 얼음이 밟힌다. 하얀 모래위로 맑디맑은 물이 조잘 댄다. 손을 담가 물을 떠 본다. 아직은 물이 차다. 저만치 정물처럼 서있는 백로와 물오리 몇 마리 앞에 조약돌 하나를 던지며 신고식을 했다. 동심원을 그리며 물무늬가 내게로 퍼져온다. 호숫가에 심겨진 수양버들은 푸르스름한 빛을 머금어 서기(瑞氣)를 띄운다. 산비탈의 나무들과는 다른 빛깔이다. 분명한 봄빛이 거기 머물러 있어 우린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가로로 늘어서서 한참을 걸어도 차한대도 오지 않은 한적한 신작로에서 우리들의 얘기소리, 웃음소리가 맑은 음향으로 울려 퍼진다. 우린 냉이를 찾아 밭을 기웃거렸다. 밭이라고 아무 밭에나 냉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친구하나가 냉이 밭을 발견했다고 소리친다. 냉이들도 옹기종기 모여서 난다. 식물도 동물처럼 모듬살이로 살아간다.

  정월보름 안에 냉이 국 세 번을 먹으면 보약 한제와 맞바꾼 것과 같단다. 산삼발견 한 듯 반가운 마음이다. 양지쪽은 흙이 푸석푸석하나 음지쪽엔 아직 녹지 않아 언 땅을 후볐다. 봄이 되면 한 번만이라도 나물을 캐고 싶다. 자연과 동화된 정서를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나물 캐는 평화스런 추억을 만나는 기쁨! 겨우내 움츠렸던 메마른 정서에 힐링 효과 만점이다. 냉이보따리를 풀었다. 삼 꺼풀 같은 냉이뿌리도 다듬어 제 빛깔을 되찾으니 상품(商品)이 되었다. 역시 사람손이 보배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정성을 드리고 의미를 부여하면 예술이 되고 작품이 된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저녁상에 오른 상큼한 냉이 국으로 입 안 가득 봄 향기를 머금다.

  이튼 날은 무주리조트의 향적봉을 오르기로 했다. 출발 할 때는 화창하던 날씨가 무주로 갈수록 심상치 않다. 눈발도 날린다. 곤도라를 타고 중턱에 내리니 눈보라가 지척도 안 보이게 몰아친다. 이곳은 완전히 겨울이다. 이내 눈보라는 순록의 뿔 같은 상고대로 아름다운 조화를 부린다. 꿈길을 걷는 듯 나를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사진으로만 보던 상고대의 비경과 향적봉을 정복하는 기쁨은 말해서 무엇 하리. 포기하지 않고 향적봉을 정복했다는 게 대견하고 등산에 자신감을 불어준다. 봄 마중에 만난 상고대의 운치로 무미건조한 마음이 힐링 되어 새 힘이 솟는다.

 

 약력: 2004, 종합문예지 <<한국문인>>으로 등단

  전북문인, 영호남수필회원, 행촌수필 현 부회장

  수필집: <<꽃으로 말한다>>, 행촌수필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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