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쉬운 말 하지만 너무 어려운 말
너무 쉬운 말 하지만 너무 어려운 말
  • 박성욱
  • 승인 2016.07.07 2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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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00이 전학 왔을 때부터 말 안했어요!

우리 반에 샘물(가명)이라는 한 친구가 있다. 우리 학교에 처음 전학 왔을 때도 그 이후로도 말을 하지 않았다. 작은 눈짓, 고갯짓, 몸짓으로 친구들 선생님들과 이야기 한다. 그런데 샘물이가 말하는 사람이 딱 한 사람이다. 바로 샘물이 옆에 딱 붙어 앉아 있는 바다(가명)다. 샘물이와 바다의 대화는 단 둘이 있을 때만 이루어진다. 아무도 없고 조용한 곳에서 둘만의 알콩달콩 대화가 이어진다. 혹시 누군가 주위에 나타나거나 시끄러워 지면 대화는 멈춘다. 그래서 둘이 대화하는 모습을 본 사람도 없다. 항상 밝고 명량하고 씩씩한 바다가 둘이 있을 때 샘물이가 말은 한다고 전해줘서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송중기(?) 샘물이 신발 끈을 메주다.

15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40대에 이제 막 들어선 인생을 살면서 머리로 알게 된 지식보다 몸으로 겪고 마음으로 느낀 것이 참 지식이 됨을 자주 깨닭게 된다. 나도 그렇지만 아이들도 꽉 막힌 교실 속에서만 수업을 하라고 하면 참 힘들다. 그래서 밖으로 자주 나간다. 국어 수업 면담하기를 프로젝트 수업으로 구성했다. 각 모둠별로 지역에 계신 어른들을 만나서 면담하도록 했다. 6학년 이다보니 진로 교육과도 연결시켰다. 파출소, 보건소, 면사무소, 구이중 등을 방문하여 각각 면담을 진행했다. 학교에서 목적지 까지 오고 가면서 아이들과 함께 길가에 찔레도 꺾어먹고 들꽃으로 꽃다발도 만들고 이래저래 해찰하니 나름 재미가 더해졌다. 샘물이와 가까워지지 위해 샘물이 걸음걸이에 맞춰서 걸었다. 아내와 연애할 때 이후로 누구와 발걸음 속도를 같이 하면서 걷기는 처음이었다. 항상 나를 따르라 하면서 앞장서는 나인데 말이다. 그런데 샘물이 신발 끈이 풀어졌다. 순간 기회가 온 것이다. ‘태양의 후예’ 드라마 송중기 인척 너스레를 떨면서 샘물이 신발 끈을 메 주었다. 샘물이 너는 ‘송혜교’라고 강요하면서 웃으며 걸었다.

샘물이의 썰물

갯벌 체험 학습을 떠나는 날 아침. 바다가 샘물이의 손을 잡고 내게 뛰어왔다.

“선생님 샘물이가 이제 선생님한테 말한데요. 야아 어서 말해 니가 말한다고 했잖아!”

피식피식 웃기만 한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 여기까지 몇 년이 걸렸던가! 결코 오버해서는 안 된다. 평상시와 똑같이 자연스럽게……. 말 참 쉽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참 어려운 말이다. 샘물이가 말은 한 것은 우리 학교에서 진짜 큰 사건(?)이다. 아이들은 정말 신기해했고 놀라워했다. 샘물이가 드디어 마음을 드러냈다. 샘물이 마음의 썰물이 찾아온 것이다. 갯벌 가는 날에 일어난 일이라서 제자가 쓴 독후감 한 편이 떠올랐다. ‘너도 하늘 말나리야’라는 책을 읽고 쓴 ‘삶은 밀물과 썰물처럼’이라는 독후감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바우도 선택적 함구증을 가지고 있다. 독후감의 상황과 샘물이의 상황과 너무 비슷하여 여기에 짧게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삶은 밀물과 썰물처럼

“너도 하늘 말라리야.”라는 책을 받아 들었을 때 작은 글씨에 멋지고 화려한 그림도 없고 두껍기까지 해서 왠지 읽기가 싫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처음 책장을 넘기면서 주인공인 미르와 소희, 바우를 만나면서 왠지 모를 좋은 냄새를 맡는 것 같았다. 바다 냄새였다. 밀물이 밀려오고 썰물이 빠져나가는 바다. 그 바다 냄새가 풍겨나와 내 마음을 적셔 오는 것 같았다.

밀물 때는 물이 들어온다. 밀물 때는 잔잔한 물결위에 부서지는 햇살과 파도, 아름답게 보이는 겉모습 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썰물 때는 물이 빠져나간다. 썰물 때는 긴 갯벌 위에 여저저기 어지럽게 파인 도랑이 드러난다. 그리고 작은 게, 고동, 조개들이 꿈틀꿈틀 움직이는 속 모습 그대로 볼 수 있다. 친구에게 감추고 싶은 것 부모님에게 감추고 싶은 것 사람들에게 감추고 싶은 것이 있다. 그냥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 창피해서도 그런 것 같고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바로 그때가 밀물이다. 하지만 때가 되면 정말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언제가 다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정말 좋은 사이가 될 수 있다. 아무리 그 주변이 추하고 어지럽게 보일지라도 그 속에서 꿈틀대는 마음들을 보아야 하고 그 마음들을 받아들여야 할 때. 그때가 썰물이다. “너도 하늘 말라리야”에 나오는 주인공 친구들인 미르, 소희, 바우가 펼쳐놓는 이야기가 꼭 바다 이야기 같았다.

전학 온 미르는 친구들에게 엄마 아빠가 헤어졌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었다. 그 속을 들여다 본 친구가 없었기에 친구들은 미르에게 따먹지 못할 포도라고 하였다. 하지만 소희는 그것을 볼 수 있었다. 소희도 엄마가 집을 나가시고 아버지는 돌아가셨기 때문에 미르의 가면 속 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미르가 혼자만의 느티나무에 외롭게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선 미르의 썰물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토록 차갑게만 굴던 미르의 마음을 보자. 아주 잠시였지만 소희는 미르를 부러워했다. 비록 헤어져 있기는 하지만 미르에게는 희망이 되는 엄마가 있었고 소희는 엄마가 없었다. 엄마의 빈자리가 채워져 있는 미르를 볼 때 마다 소희는 참 부러웠다. 나도 친구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우리는 모두 미르처럼 가면을 쓰고 밀물처럼 생활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밀물과 썰물은 반복된다. 때론 가면을 벗고 생활해야 한다. 나도 내 짝꿍 지혜와 싸웠을 때는 그 아이가 싫고 싸우지 않았을 때는 감추고 싶은 것 없이 하나도 없이 친하게 지낸다.

미르네 엄마는 보건소에서 일한다. 어느 날 미르는 엄마가 일하는 보건소에서 바우를 만난다. 바우는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아이였다. 바우의 어두운 그림자에는 엄마를 잃은 충격이 있었다. 그림자는 내 모습 그대로 그려지고 내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인다. 바우의 병인 선택적 함구증은 바우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사람하고만 말하는 병.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바우가 처음에 미르에게 말을 걸고 싶지 않았던 까닭은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병 때문이 아닌. 서로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서로에게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 나도 처음 친구를 사귀는 것이 참 낯설 때가 많다. 마음을 열고 다가가기가 힘들다. 하지만 한번 두 번 만나면서 마음을 조금씩 열고 마음을 나누면 좋은 친구를 사귀게 된다.

미르와 소희, 바우는 각자 자신을 포장하고 있는 밀물을 걷어내고 진짜 자신의 모습인 썰물을 드러낸다. 가슴 깊이 아프게 파인 고랑들도 드러내고 어지럽고 지저분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 속에서 어떻게든 밝게 씩씩하게 살아가려는 모습을 보여 주게 된다. 작은 게, 고동, 조개들처럼 꿈틀거리며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바우는 엄마의 묘에서 소희를 ‘하늘 말나리’라는 꽃이라고 말했다. 하늘말라리, 하늘을 바라보며 피는 꽃, 절대 땅을 바라보지 않는 꽃, 꽃이 피려면 햇빛, 양분, 물이 필요하다. 소희, 바우, 미르는 서로에게 햇빛, 양분, 물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어쩌면 서로가 ‘하늘 말나리’ 꽃으로 같이 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어쩐지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따뜻하고 달콤하고 향기로운 친구 냄새. 가슴 속 깊이깊이 들이 마시고 싶다.

친한 친구에게 친해지고 싶은 친구에게 내 겨울에 비친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친한 친구에게 내 거울에 비친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살아가는 모습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서로 같이 나누고 싶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 숨기고 싶은 것, 말하고 싶은 것, 말하기 싫은 것, 좋은 것 싫은 것. 그것은 세상에서 매일 반복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도 자연 현상 에서도 밀물과 썰물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리고 밀물과 썰물은 반복된다. 그것을 나는 너도 하늘말나리야 라는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도화지에 표현한 내 그림. 못 그려서 남에겐 보여주고 싶지 않은 그림

하지만 내가 그려서 좋은 내 그림. 친구가 따뜻한 눈으로 함께 그려주어서 더 좋은 내 그림. 그러기에 내 마음의 썰물은 아름답다.

오늘도 밀물과 썰물은 반복된다.

진실하게 자연스럽게 원래 모습 그대로 서로 평화롭게 어울리면서 오늘 하루도 감사하면서 살고 싶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컸으면 좋겠다. 밀물은 밀물대로 썰물은 썰물대로 반복되면서 하루 또 하루가 지나가듯이

박성욱(구이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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