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봉 고용집 선생을 생각하며
죽봉 고용집 선생을 생각하며
  • 고삼곤
  • 승인 2016.07.07 14: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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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가 오락가락하는 여름철이다.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날짜와 절기가 맞지 않는 현상이 생길 거라고 하는데 올해는 장마 기간에 말 그대로 큰비가 내렸으면 한다. 비 피해가 생기지 않은 전제로 말이다.

 나의 조상 할아버지의 고향은 군산 옥구군 임피면 갈운동(현 월하리 상갈마을)이다. 지금부터 460여년전 완주 고산에서 목사공 고서(高恕)의 정부인 광산김씨 할머니가 외아들 고덕령(高德齡)을 데리고 갈운동으로 옮겨와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파거조(派居祖) 광산김씨 할머니가 선택한 갈운동은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역이다. 서북쪽에는 군산 오성산에서 이어져온 학당산이 자리하고 동쪽과 남쪽은 드넓은 쌀농사 논들이 펼쳐져 있다. 동쪽 지평선 너머가 익산 미륵산이고 남쪽 눈길 끝나는 곳에는 김제 모악산이 자리하고 있다.

 이름하여 평야(平野)라 하는 지역이 이곳이다. 인근에 대야(大野)라는 지명이 있는데 ‘큰벌판’인 이곳은 김제평야와 더불어 가장 큰 곡창지역으로 일제 강점기때 대표적인 쌀 수탈지역이다. 일제는 여기의 쌀을 군산항으로 실어가기 위해 일찍이 철도를 개설하였다.

 명종 임금 당시 용안, 천안, 홍주목사를 역임한 남편 목사공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광산김씨 할머니는 산으로 둘러싸인 고산(高山)보다 후손들의 장래를 위해 물산이 풍부한 곡창지대로 옮겨오는 큰 모험이자 탁월한 선택을 한 것이다.

 갈운동에 정착했지만 후손들은 본향인 고산의 선산(先山)을 잊지 않고 지켰다. 고산에는 계조(系祖) 사직공 고인충(高仁忠)의 묘소가 있는데 후손들이 멀리 산다는 이유로 타성(他姓)들이 명당인 이곳의 나무를 베고 암매장을 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고산현감, 전주관찰사에게 63년간, 30여 차례 상소문(上疏文)을 올려 기어이 해결을 하였다.

 자손들이 유족한 환경 속에서 살기를 바란 광산김씨 할머니의 가르침은 후손들에게 유전되어 죽봉(竹棒) 고용집(高用楫, 1672-1735)이 나온다. 고용집은 현종 13년에 태어나 영조 11년에 작고(作故)하였다. 할아버지 고이원과 아버지 고필은 신독재, 김집과 우암 송시열 문하에 출입하여 아들 고용집 에게도 학풍을 이어주었다.

 고용집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시를 잘 지어 신동으로 불렸으며 문장도 잘했으나 과거에는 실패하였다. 이에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김집과 송시열의 문하에서 오직 학문 연구에만 전념하였으니 성리학에 침잠(沈潛)하고 경서(經書)에 몰두하여 율곡 이이(李珥)의 학풍을 계승하였다.

 고용집은 유고로 죽봉집을 남겼다. 집에 화재가 발생해 부분 소실되고 벌레먹고 먼지에 묻힌 죽봉의 자료를 후손들이 모아 200년후인 1938년 갈운동 영모재(永慕齋)에서 3권 1책 석인본으로 발행하여 국립중앙도서관과 장서각, 전북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죽봉집에는 209수의 한시(漢詩), 수필, 편지글, 기행문, 축문, 임금께 올리는 상소문, 행장 만장 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조선 중후기 노론과 소론의 갈등과 대립상을 엿보는 소중한 자료가 된다는 게 학자들의 평가이다.

 하지만 한문세대를 지나 한글세대로 접어드는 세월의 흐름 속에 부득이 임피 갈운동 영모제가 중심이 되어 한글화 번역 재출판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조상을 받들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전통은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이며 자랑이다. 임금에게 충성하고 어진이를 존경하는 대의(大義)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한글화 재출판은 꼭 필요한 사업이다.

 갈운동 학당산(學堂山) 줄기에는 장심혈이라는 제주 고씨 목사공 후손들의 선영(先塋)이 있다. 그 옆에는 호원대학교(湖原大學敎)가 자리하고 있다. 그 옛날 이곳에 서당이 있었고 지금에 와서는 대학교가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 청송 고형곤 전 전북대총장이 태어났고 고건 전 국무총리 본적이 있다.

 죽봉선생의 면면한 학풍은 후세에 계속 이어져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이 나라를 살찌우고 이 고장의 풍속을 바루는 소중한 유산으로 가꾸기 위해 고씨 문중(門中)에서 펼치는 한글 번역사업에 유지지사들의 많은 협조를 바란다.

 고삼곤<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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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유섭 2018-09-18 14:45:21
친가가 임피면 상갈마을인 사람입니다. 마을의 역사를 알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