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존재의 본질을 차분한 어조로 직관
인간과 존재의 본질을 차분한 어조로 직관
  • 김동수
  • 승인 2016.07.07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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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8. 구연배(1960-)

 전북 진안 출생. 전북대 문헌 정보과 대학원 졸업. 1995년 전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 후 진안문학상 수상. 현 서해대학 교수로 재직. 시집으로 <<빗방울은 깨져야 바다가 된다>>(1996), <<,환한 꽃 그늘>>(2006), <<사계 그리고 환절기>>(2013) 등이 있으며 꽃을 소재로 삶의 단상을 잔잔하게 그려내는가 하면, 물이 되어 세상을 정관하며 공과 색의 중도를 통찰, 직관적 서정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봄 숲에 들어가
 나무에 등을 기대보면
 수관을 타고 오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젖살을 더듬는 아이처럼
 바람의 온기와
 흙 속의 물기를 발아들이는
 넉넉한 뿌리의 힘

 저 소리가 터져 꽃잎이 되느니
 저 온기가 퍼져 그늘이 되느니

 봄 나무 같은
 그대 등에 기대어
 혈관을 타고 흐르는 붉디붉은
 그리움 소리를 듣고 싶다.

 슬픔이 터져서
 절정의 노래가 되는
 그리움이 차 올라
 꿈길 환히 열리는
 비밀한 사랑을 우거지게 하고 싶다.

  - <그대 등에 기대어> 전문
 

  ‘그대’와 ‘나’가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변방에 내몰린 화자의 쓸픔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한 전통 서정시의 모습이다. 나무가 수관을 타고 올라 ‘꽃’이 되고 ‘그늘’이 되듯 화자 또한 그(나무)에게 다가가 그의 ‘노래’가 되고 ‘꿈길’이 되어 ‘비밀한 사랑을 우거지게 하고 싶다’는 소망이 그것이다.
 

 물결을 딛고
 수면 위로 올라선 수련.

 젖꼭지를 문 아기처럼
 강물을 움켜쥐고
 볼이 미어지도록 해시시 웃는다
 
 굽이굽이 잠긴
 산맥의 발목을 씻으며
 바다로 가는
 강물의 노래는 깊어 가는데

 수련 핀 아침
 빈 하늘 가득
 흰 구름 몰려간다. -<수련 피는 아침> 전문
 

  흘러가는 구름과 강물, 멈춰 있는 산맥과 연꽃 그 대비적 관계 속에서 동(動)과 정(靜), 찰나와 영원을 함께 아우르고 있다. 그것은 흘러가는 강물 속에서도 고요히 떠 깊어져 가는 수련의 모습이요, 현상과 본질을 직관한 동양적 정관의 세계이기도 하다.
 

  저 달 속에는
  흔들리면 흔들리는 만큼 더 고요한
  숲이 있다
  흐르면 흐르는 만큼 더 깊은
  강이 있다 -<달의 이미지> 일부

  길 너머 길을 보는 물
  내가 되어 나를 흘러가는
  그런 물이 되고 싶다 -<물이 되고 싶다> 일부
 

  ‘구름’과 ‘물’이 현상적 자아라면 달은 우주적 존재, 곧 도(道)의 세계라 하겠다. 이처럼 구연배의 시는 공과 색이 하나로 통합되는 ‘현상 속의 법신관’을 지향하며 인간과 존재의 본질을 차분한 어조로 직관하고 있다.

(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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