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일본인
일본, 일본인
  • 이동희
  • 승인 2016.06.2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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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에도 버리지 못하는 입버릇이지만, 일본 사람을 지칭할 때는 꼭 ‘~놈’이라는 접미사 붙여 말하는 버릇이 있다. 또한, 일본의 정치인들이나 일본 극우인사들이 혐한(嫌韓)시위를 하거나, 독도가 저네들 땅이라고 우길 때마다, 급기야 일본 초등학교 시험 문제에까지 저네들 땅 독도[다케시마]를 강점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고 가르친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드러내놓고 그랬다. “우리나라는 일본-일본인과는 영원히 선린우호(善隣友好)의 이웃이 될 수 없을 것이다.”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일전에 고희를 넘기신 여류시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시인의 동생이 일본인 며느리를 보았다고 한다. 형제·자매들끼리 이야기를 하다가 부지불식간에 “…일본놈들…”이라는 용어가 튀어나왔던 모양이다. 좌중의 어느 누구도 이런 언사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는데, 일본여인을 며느리로 본 동생이 파르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아니, 언니는 어쩌면 나를 앞에 두고 그렇게 험하게 말할 수가 있어요? 내 며느리가 일본인인데, 그렇게 하대하면 내가 듣기 좋겠어요?”하며 섭섭해 하더라는 것이다. 모두 잠시 뻘죽했지만, 듣고 보니 동생의 이의와 섭섭한 마음에 일리가 있어, 그 자리에서 사과하고 그 이후로는 발언에 유독 신경이 쓰인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웃었던 적이 있다.

 이처럼 한일 간에 놓인 역사적인 질곡은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노력을 기울인다고 할지라도 그 역사의 상처가 지워질 수 있을까 말까 한 것이 바로 국가와 민족의 관계다. 그런 노력은커녕 오히려 21세기에도 제국주의적 역사의식으로 일관하며 역사를 왜곡하고 불신의 장벽을 쌓아가는 일본 위정자들, 이를 제때 제대로 반박하거나 시정하지 못하고 미봉책에 급급한 한국의 정치인들을 볼 때마다 “…일본놈…친일파…”란 말이 입에서 가시질 않는다.

 그러나 필자가 한 일본 시인의 시집을 구입하여 통독하고는 이런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훌륭한 문학작품의 특성으로 항구성(恒久性)과 보편성(普遍性)을 꼽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어느 나라 문인의 문학작품이건 제 나라의 영광과 제 민족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웃 나라와 이웃 민족을 폄하하고 왜곡하는 문학작품은 문학으로서 용납될 수 없다. 일본, 일본인들에게 훌륭한 작품은 세계 어느 나라나 민족에게도 훌륭한 작품이어야 한다. 일본인의 문학작품이 세계인의 선호와 기림을 받을지라도 한국인들로부터 선호되지 못하고 기림을 받지 못한다면, 문학의 특성인 항구성과 보편성을 갖추지 못한 격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라도 일본 시인이 한국-한국인의 역사적 특성을 이해하고, 한국인들이 겪었을 역사의 상처를 미안해하는 마음, 한국문화의 특성을 옹호하며 인류애로 무장한 시를 목격하면서, “아하, 역시 문학의 힘은 이런 것이겠구나!”하는, 진즉부터 익힌 ‘문학의 항구성과 보편성’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혼다 히사시(本多壽)의 시집 <피에타>에 이런 시들이 실려 있다. “나는 무궁화가 피는 길을/ 고개를 숙이고 걷는다/ 말없이 걷는다/ 따끔따끔 통증이 이는 발을 어루만지며 걷는다/ 가슴의 동통(疼痛)을 쓰다듬으며 걷는다”「무궁화 환상」이라는 작품의 결구다. 또한 이런 구절도 발견할 수 있다. “여인이여 언젠가/ 가야금으로 변신해 버린 여인이여/ 나는 그대를 안고/ 애도(哀悼)의 여행에 나서리라/ 그리고 낙동강 가를 찾아가리라/ 고향에 도착하면/ 푸른 오동나무 밑둥치에/ 그대를 묻어 주리라”「가야금 환상」이라는 작품의 4연 중 끝 연이다.

 다른 나라의 역사적 아픔을 이해하고, 이민족이 겪은 고통에 공감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역사의 이면에서 숨 쉬는 민족의 한과 문화적 전통까지를 아우르는 인식을 갖기는 거의 불가능한 수준일 것이다. 가해국의 국민으로서 피해국과 그 민족이 겪었을 아픔에 공감하며 인류애를 발휘한다는 것은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수천 년 동안 누적된 민족의 앙금을 단 한 번도 청산하지 못한 한일관계가 아닌가?

 그러나 혼다 히사시라는 일본 시인은 문학적 진실성에 입각한 지성인으로서, 보편성의 진리를 추구하는 시인으로서, 그리고 인류애를 신봉하는 세계인의 안목으로 한민족의 역사적 아픔과 안으로 쌓인 ‘한(恨)’의 정서를 온몸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그것이 위로의 것이든, 공감의 차원이든, 이런 정도의 인식 수준이라면, 일본, 일본인을 굳이 ‘~놈’이라며 하대하려 했던 내 인식 수준이 얼마나 옹졸했던가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역시 “시는 국경과 민족을 초월하여 인류가 공유하는 영혼의 노래”임이 분명해 보인다.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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