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어른이 되었다
어쩌다 어른이 되었다
  • 이문수
  • 승인 2016.06.26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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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어른이 되었다. 그냥 나이를 먹어서 어른이 되었고, 주변 모든 사람도 필자를 어른으로 대접한다. 나이가 더디게 먹히던 시절에는 조급한 마음에 은근슬쩍 한두 살을 더해서 말했던 적도 있다. 살이 검고 탄력 없는 피부를 타고난 덕택에 처음 만나는 사람은 지금도 속일 수 있지만, 요즈음에는 가능하면 만으로 나이를 말한다.

 어린 시절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은 어른에게는 힘과 권위를 기반으로 한 자유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슬픈 사실을 어쩌다 어른이 되면서 알아버렸다.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어도 자신의 삶을 결정할 힘과 자유를 선택할 용기가 없다면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선택의 자유가 인간 존재의 근거라는 게 통념이지만, 선택의 자유보다는 자유 자체를 선택한다면 학습된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를 선택한다는 것은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떼야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타인의 말이나 글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노예의 삶이지 주인 된 삶일 수 없으니까. 자유를 선택할 용기를 가지고 주인으로 살기를 원하는 독자와 나누고 싶은 글이 있다. 왠지 겸연쩍지만, 필자가 남몰래 무시로 암송하는 글귀다. ‘홀로 게으르지 않으며, 비난과 칭찬에 흔들리지 마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렇게 묵묵히 걸으면서 염치를 안다면 진정한 어른이다.

 <장자>에 ‘한단지보(邯鄲之步)’라는 고사가 있다. 어느 초나라 사람이 조나라 사람의 걸음걸이가 세련되어 보여서 그 걸음걸이를 흉내 내다가 자신의 걸음걸이마저 까먹어 버려 이도 저도 아니게 엎드려 기어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다른 걸음걸이를 흉내 내는 것이 ‘동일자의 반복’이라면, 자기만의 걸음을 걷는 것은 ‘차이의 반복’이다. 남을 흉내 내지 않고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지만, 자기만의 ‘차이’를 생산해서 실천해야만 한다. ‘차이’를 생산하는 것은 남의 말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말을 하는 것, 다시 말해 잃어버린 자기 목소리를 되찾는 것이다.

 오는 7월 3일까지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전북청년 2016> 전에서는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떼고 묵묵한 걸음으로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 젊은 미술가를 만날 수 있다. 도립미술관이 청년미술가를 발굴해서 지원하기 위해, 공모를 통해 선정한 유망한 미술가다. 이들은 많은 사람의 관심과 더러는 부담스러운 기대를 온몸으로 감당해 내면서 제대로 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열정과 힘이 관람객에게는 큰 감동을 주고 있다. 탄소가 거대한 압력을 이기면 다이아몬드가 되고, 압력을 이기지 못하면 흔한 숯으로 남는다. 건강한 압력을 통과한 미술가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4명의 미술가는 <아시아현대미술전 2016>에도 참여해 촉망받은 전북청년의 힘을 보일 것이고, 아시아권 레지던시를 통해서 국제적인 관계망을 넓혀갈 것이다.

 미술계의 불미스런 일(대작 논란)이 입줄에 오르내리고, 미술계 사정이 최악이라고 말하지만 이런 말이 무색하게 대형 갤러리는 역대 최고의 매출을 자랑한다. 반면 소형 갤러리들은 누적된 적자로 문을 닫는 곳이 늘어난다. 이런 양극화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난 지 너무 오래다. 자본주의와 예술의 관계는 뒤얽혀 돌아가기 때문에 그사이에 낀 예술가도 예외일 수 없다. 어수선한 시기지만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고, 낡은 습속을 버리고, 세속에 아첨하지 않으면서 온 힘을 다한 청년미술가가 자랑스럽다.

 너무 맑아서 불온한 시인으로 몰려 옥고를 치렀던 시인 이광웅 선생은 이 땅에서는 “뭐든지 / 진짜가 되려거든 / 목숨을 걸고” 해야만 한다고 했다. 어차피 이 땅에서 청년미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꾸는 질펀한 한바탕의 꿈이다.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떼면서 자유 자체를 선택하는 것이다. 묵묵히 걸어서 가보자. 오래오래 살아야만 하는 100세 시대에 젊어서 너무 일찍 잘되는 것도 위험한 일 아닌가.

 이문수<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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