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두테르테
트럼프와 두테르테
  • 장상록
  • 승인 2016.06.2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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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의 이 말속엔 서구 지성이 느낀 절망과 반성이 담겨있다. 그렇다고 아도르노가 서정시를 쓰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는 문화 파괴적 의미를 담고 한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인류의 이성이 얼마나 황폐화 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것에 대한 웅변으로 이 한마디를 능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역설적이지만, 만일 히틀러(Adolf Hitler)가 쿠테타와 같은 비정상적 물리력을 사용해 권력을 탈취한 것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안도(?)했을지 모른다. 그렇다. 히틀러는 집권하는데 있어서 합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괴물을 선택한 것은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와 칸트(Immanuel Kant)를 배출한 바로 그 사람들이다. 도산(島山) 안창호가 극찬했던 근면하고 질서정연하며 이지적인 독일인은 왜 그런 선택에 나선 것일까.

 유태인을 학살하는 데 기름을 부은 것은 히틀러지만 거기에 동참을 넘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은 다름 아닌 수많은 독일인이다. 여기서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당시 독일인이 가지고 있던 패배감과 상실감에 주목한 것이 히틀러였다는 사실이다. 역사에서 우린 과연 무엇을 배우는가.

 어쩌면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게 될지 모른다. 트럼프 (Donald John Trump)와 두테르테(Rodrigo Duterte)가 승리하는 세계는 어느 한 꼭지에서 과거의 비극과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종말로 까지 여겨졌던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고 지금까지도 독일을 상징하는 아우토반을 건설했으며 독일에게 가혹한 베르사이유 체제를 단호히 거부한 지도자. 이 얼마나 멋진가. 주인공은 다름 아닌 히틀러다.

 두테르테는 필리핀의 대통령이 됐고 미국의 트럼프도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들을 히틀러에 비유한다면 양 국민에 대한 모욕이자 결례일지 모른다. 그래서 조심스럽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두 사람의 언행에서 느끼는 양 국민의 쾌감은 심히 우려할 만하다.

  범죄자를 즉결처형하고 국익에 반하는 개인과 나라에 대해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응징하고 말겠다는 사고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한 나라의 지도자의 인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이제 우리 문제를 돌아보자. 청년실업률 증가와 경제난은 아무 잘못 없는 외국인 근로자를 향해 비수를 들이댄다. 인륜을 저버린 흉악범에 대한 분노는 사문화된 사형제에 대한 비판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사법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법이 아닌 개인의 응징을 정당화하는 심리상태로 이어진다. 그 어떤 흉악범도 결코 사형대에 오르지 않으며 그의 인권은 충분히 보호 된다. 그럼 피해자의 삶은 어떤가. 국민의 세금으로 천수를 다할 때까지 의식주가 제공되는 가해자와 그들로 인해 산산이 부서진 남겨진 자의 슬픈 현실을 어찌할 것인가. 응보주의는 결코 야만이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응보가 사라진 체 남은 허상이 문제다.

 영화 [맨 온 파이어(Man On Fire)]에서 주인공 댄젤 워싱턴(Denzel Hayes Washington Jr.)은 이렇게 얘기한다. “용서는 신과 그 놈들 사이의 문제다. 내 일은 바로 그 놈들이 신과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흉악범에 대한 자비와 용서는 제3자가 얘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온전히 신(神)과 피해자의 몫이다. 국가공권력은 흉악범들을 피해자와 사회를 대신해 징벌할 권한을 위임 받았을 뿐이다.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사회에서 정의는 의심받는다.

 트럼프와 두테르테가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되는 것은 그 나라의 국민이 선택할 문제다.

 그리고 그 선택된 지도자가 행한 행위에 대한 책임은 그와 같은 크기로 그 나라 국민에게 귀속한다. 이런 인물이 한국에도 나온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 될 것이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정의에 대한 완벽한 정의는 아닐지라도 새겨볼 말이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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