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법, ‘중환자 기피법’이 되지 않으려면
신해철법, ‘중환자 기피법’이 되지 않으려면
  • 김형준
  • 승인 2016.06.19 19: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료사고 피해자의 분쟁조정 절차를 돕는 이른바 ‘신해철법’이 지난달 5월 19일 열린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신해철 법으로 불리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재석 192인 중 찬성 183인, 반대 2인, 기권 7인으로 가결했다.

가수 신해철은 2014년 10월 17일 위장 수술을 받은 후 가슴과 복부 통증으로 입·퇴원을 반복하다 같은 달 22일 병실에서 심정지로 쓰러졌다. 이후 신씨는 혼수상태로 서울아산병원으로 후송돼 긴급 수술을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수술 5일 만인 10월 27일 생을 마감했다. 이에 따라 유가족들이 의료사고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의료사고 분쟁조정신청을 하였고 해당 병원에서 조정절차에 거부함으로 결국 정식 재판으로 넘어가면서 현행 법안의 불합리함이 문제가 되었고 결국 이번에 법 개정이 된 것이다.

의료사고 분쟁조정제도는 의료진의 과실을 환자 측이 밝혀내야 하는 소송에 비해 시간과 비용이 단축된다. 조정 효력도 재판상 화해와 동일하다. 그래서 복잡하고 까다로운 정식 재판보다는 조정절차를 통해 의료사고 피해자에게는 좀 더 쉽게 억울함을 밝힐 수 있고 의료진도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어 소신진료를 유도하기 위해 실시된 제도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피해 환자와 의료기관 어느 한쪽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조정 절차조차 밟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 의료사고로 사망이나 1개월 이상 의식불명, 혹은 장애등급 1등급 판정을 받게 될 경우 피해자나 가족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신청을 하면 의사·병원의 동의 없이 분쟁조정이 개시되는 것으로 법이 개정된 것이다.

이전 법사위에서 의료사고로 사망한 자에 대해서만 조정을 자동으로 개시하는 안과 1개월 이상 의식불명 등 중상해자에 대해서도 조정하는 안을 두고 여야가 팽팽한 이견을 보였다. 여당 일부 의원은 사망자만 인정하자고 주장했고, 야당은 중상해자까지 포함하자고 맞섰다. 그러나 여당이 논의 끝에 중상해자 포함 안을 수용하기로 선회하면서 이 법안은 19대 마지막 법사위를 통과했다. 신해철법은 과거에 ‘예강이법’으로 불린 바 있다. 2014년 예강이는 코피가 멈추지 않아 찾은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요추천자 시술을 받다 쇼크로 사망했다. 예강이 부모는 딸의 사인을 밝히고 의료진의 잘못이 있었다면 사과를 받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의료조정을 신청했다. 하지만 당시 병원의 반대로 분쟁조정 절차는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이번 개정안이 시행되면 예강이와 같은 사례가 반복되지 않을 것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뜻 보면 당연한 법안이 이 법이 사실 의료인들 사이에서는 “중환자 기피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이 신해철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의사들이 의료분쟁에 시달릴 우려가 큰 중환자나 응급환자 등의 진료를 기피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는 것이다. 실제로 국회 입법조사처가 신해철법(의료분쟁 조정 자동개시법) 시행으로 진료 위축, 의료분쟁의 무분별한 증가 등이 우려된다고 뒤늦게 지적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신해철법 국회 본회의 통과의 의의 및 향후 과제’를 주제로 한 ‘이슈와 논점’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에 따르면 입법조사처는 “개정 의료분쟁조정법의 수혜자라고 볼 수 있는 의료소비자뿐 아니라 의료계에서도 법의 실효성과 부작용에 대해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고 환기시켰다. 법의 흠결보다는 입법과정에서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절차적 노력이 기대만큼 충분치 않았고, 이로 인해 향후 제도 시행과정에서 입법 목적에 반하는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입법조사처는 “조정절차 자동개시 대상인 장애등급 1급의 범위를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어 그 범위가 현행 유지 또는 축소될 수 있다”면서 “이 경우 제도의 실효성과 의료인의 진료행위가 위축되지 않도록 대상 범위를 보다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또 입법조사처는 사망자와 1개월 이상 무의식 상태의 환자도 조정절차가 자동개시됨에 따라 분쟁조정 신청이 무분별하게 증가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입법조사처는 “이렇게 되면 의료인 특히, 대형병원에서 중환자를 담당하는 의료인은 조정절차에 얽매이게 돼 소극적 진료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책을 중요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망, 장애 등 의료행위를 통해 원치 않는 결과를 가져온 의료사고가 의료진의 과실에 의한 경우 그 합당한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이 의료의 특성상 불가항력적인 무과실 결과가 수도 없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무분별한 분쟁과 의료행위를 위축시켜는 결과를 가져와도 안 될 것이다. 정부는 국회입법조사처의 우려처럼 좀 더 보안된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제정해 합리적 결과를 만들기 기대해 본다.

 김형준<신세계효병원 진료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부안군 정신건강증진센터 센터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