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수업하기
숲에서 수업하기
  • 진영란
  • 승인 2016.06.1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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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부모 공개수업을 하는 날이다. 부모님과 함께 놀이수업을 2년 동안 했었는데 이번엔 뭔가 좀 다른 것을 해 볼까 고민하다가 “공개수업에 뭐 할까?”물었더니 “나이먹기해요!”라고 외친다. 우문현답이다. 언니오빠들이랑 운동장에서 얼굴이 익을 때까지 나이먹기를 하더니 재미를 들였나 보다. 나이먹기규칙을 점검해 보려고 놀아봤더니 아무 전략도 없이 운동장을 마구 뛰어 다니면서 가위바위보만 하다가 언제 나이를 먹었는지도 모르게 200살을 먹는 아이도 있다. 그래서 수공부도 할 겸 라벨지에 5부터 160까지를 써 내려갔다. 100까지만 쓰고 싶었는데 칸이 남아 어쩔 수 없었다. 거의 그리기 수준으로 부모님 것까지 한 개씩 더 만들었더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집에 가서 나이먹기규칙 부모님께 설명해주기로 하고 공개수업 당일에 아침 일찍 오시라고해서 우리가 가는 나들이부터 함께 했다. “저희는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될까요?” 운동장 가에서 주뼛거리시는 부모님 손을 잡고 올챙이를 보고 와서 본격적으로 운동장 놀이를 시작했다.

 나이먹기는 상대편 진을 찍거나 나이가 같은 사람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거나 자기보다 나이 적은 사람을 찍으면 나이를 먹는 놀이다. 나이를 먹을 때마다 자기 진에 돌아가서 라벨지에 써 진 나이를 붙이고 오도록 했다. 젊은 피를 당해내지 못하고 부모님들이 헥헥 거리시는 모습. 나이 좀 드셔보시겠다고 부모님들끼리 연합해서 1학년 아이를 끝까지 쫓아가시는 억척같은 모습. 역시 놀이가 최고의 배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치원부터 묵은 감정이 남아서 어색하고 데면데면했던 친구들은 손을 꼭 잡고 연합해서 상대를 공격하고 그 부모님들께서도 서로 웃으시며 다정하게 맞아 주신다. 학년 모임 때 놀이판을 거들떠보지도 않으셨던 어머니들이 얼굴 벌개져서 뛰어다니시는 걸 보니 잊고 지냈던 놀이에 대한 본능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 오르시나보다.

 나이먹기 하고 나서 아빠들이 긴줄넘기 돌리는 동안 엄마들은 느티나무 아래서 땀을 식힌다. 다른 학년에 수업 참관하러 가시는 부모님 세 분을 제외하고 숲에서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해 보기로 하셨다. 지난 번 숲에서 나무와 의자 그네 등으로 덧셈뺄셈 이야기를 만들어 본 후라서 이번에는 무엇으로 이야기를 만들까 고민하다가 우리 반이 3월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 본 개구리와 나비가 떠올랐다. 마침 ‘애벌레가 들려주는 나비 이야기’를 읽은 후라서 숲에 사는 많은 애벌레들을 함께 찾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섬주섬 손바닥 식물도감이랑 주머니속 곤충도감, 유성매직, 도화지를 챙겨 숲놀이터에 갔다. 아이들은 씽씽 잘도 가는데 부모님들은 숨소리가 거칠다. 자상한 태석이 아버님이 수업 준비물 바구니를 들고 앞장 서 주신다. 부모님들은 우리가 숲에서 찾아낸 ‘금창초’도 ‘개별꽃’도 낯설어 하신다. 아이들은 부모님들께 자기들이 이 꽃을 찾게 된 이야기를 모험담처럼 들려주며 촐랑촐랑 앞장선다.

 부모님이 함께 하니 아이들의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숲놀이터 의자에 앉는 일도 쉽지 않다. 보다 못한 부모님들께서 “얘들아, 선생님 봐야지! 선생님 화내신다!”라고 엄포를 놓는다. 난감해 할 선생을 배려해서 한 말이었을 텐데 체면이 구겨질까 나서고 말았다. “아버님, 저 화 나지 않습니다. 보시는 부모님들께서 답답하셔서 그렇지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속담은 나를 두고 한 말이가보다. “부모님과 함께 숲에 있는 애벌레를 찾아 덧셈뺄셈 이야기를 만들어 보세요.” 부모님이 매직과 도화지를 들고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 아이들은 나뭇잎 여기저기를 뒤집어 본다. 『애벌레가 들려주는 나비의 한 살이』에서 읽은 애벌레가 풀잎을 먹고 산다는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한 쪽 구석에서 핸드폰 검색을 하고 계시던 아버님도 아이들을 따라 땅에 머리를 박고 먹이를 찾듯 킁킁거리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난다.

 “선생님 이게 뭐예요?”, “선생님 벌레 날개가 반짝거려요!” 곤충을 발견한 아이들도 신이 났지만 부모님은 마치 열 두 살 소년 소녀들처럼 생기가 도신다. 사진을 찍고 곤충도감을 넘기는 손길이 분주하다. “귀뚜라미인가?” 땅강아지처럼 생긴 곤충을 두고 아인이 아빠가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도감을 넘기던 아인이가 “산꼽등이다!”라고 정답을 말해준다. 도감을 찾는 눈썰미가 어른보다 낫다. 다른 모둠이에서는 더듬이와 눈을 빼고 모두 광택이 없는 붉은 색으로 뒤덮인 ‘대유동방아벌레’도 만난다. 청가뢰, 거미, 개미, 진딧물, 무당벌레……. 야트막한 산자락 숲놀이터에 이렇게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주인공의 정체를 알아냈으니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아이들이 이야기하고 부모님이 받아 적어 주신다. “산꼽등이 한 마리가 풀잎을 먹고 있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숲으로 달아나 버렸어요. 산꼽등이는 몇 마리 남았을까요?” 듣고 있던 유민이가 이야기 밑에 식을 만들어 쓴다. “산꼽등이 한 마리가 있다가 도망쳤으니까 1 빼기 1은 0” 다른 모둠에서는 “거미가 두 마리가 거미줄에 매달려 있었어요. 그 밑으로 개미 세 마리가 기어 옵니다. 우리가 숲에서 만난 동물은 몇 마리입니까?”라는 이야기를 만들고 시원시원하게 거미와 개미 그림까지 곁들인다. 대유동방아벌레를 발견한 모둠은 벌레가 도망칠까봐 이마를 맞대고 숨죽여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산 이곳저곳을 누비며 아이들과 부모님은 그렇게 서로를 만나고 있었다.

 숲놀이터에서 그네타고, 줄에 매달려 체력훈련만 하던 아이들은 자연에서 진정한 생명을 만나고 수학을 깨달아 간다. 교과서에서 만나는 가상의 무의미한 기호가 아닌, 지금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서의 진정한 수와 연산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도 우리들의 수학 이야기는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숲에서 내려오는 아이들과 부모님의 얼굴은 오늘 만난 낯선 생명들과 이야기가 가득 담겨 개별꽃보다 더 환하게 빛난다.

 

장승초 교사 진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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