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김제 출생. 원광대 가정과 졸업. 1978년 전북 주부 백일장에서 장원 후 1984년 『월간문학』에서 시 「강가에서」로 등단. 어둡고 암울한 속에서도 희망과 의미의 세계를 지향, 따스한 인간애를 구도 미학으로 담아내면서 시집 『恨 같이 그리움 같이』 외 다수가 있다.
한 송이
장미꽃을 받으며
휘감겨 오는 봄내음을 마시고 있다
꽃 속엔
뜻밖의 기별이
말간 샘물이 찰랑이 고여
멍멍한 일상을 딩동딩동 두드리고
바람은
꿈
속까지 들락이며
한 계절을
생기로운 비밀로 맺히려 한다
어디서
음악인 양 흐르는 울음소리
슬픔인 양 흐르는 아양소리
누군가
저 들녘을 건너
오고 있다.
- 「바람 부는 날」 전문, 1987
황영순은 기다림의 시인이다. 그에게 ‘한 송이/ 장미꽃’과 ‘뜻밖의 기별’을 안겨줄, ‘말간 샘물’같은 그리하여 ‘멍멍한 일상을 딩동딩동 두드’려 줄 ‘생기로운 비밀’의 ‘봄내음을 마시고’ 싶어 한다. ‘어디서/ 음악인 양 흐르는 울음 소리/ 슬픔인 양 흐르는 아양 소리’가 시인이 처한 상황과 그에 따른 탈출의 열망을 대변하고 있다.
흔들리네/ 햇바람으로/ 조금씩 조금씩 흔들리네// 날개를, / 하늘을 갖지 못한 아픔/ 더는 견딜 수 없어/ 바람이 되려 하네.
마구 남녘으로 날아가/ 아직 만나지 못한 꿈 섬이/그 곳에 있는가/ 찾아보겠네.// 새로이 만 가지 꿈을 밴/ 봄날 만날 때까지/ 꿈으로 가는 길목을 /지켜 설 작정이네.
- 「새 봄에」 전문, 1987
그러나 그러한 그의 열망도 ‘날개를,/ ∼갖지 못해’ ‘바람이 되어’ ‘남녘으로 날아가/ 아직 만나지 못한 꿈 섬이/ 그 곳에 있는가/ 찾아보겠’다 한다. ‘생기로운’ ‘봄내음’을 안겨 줄 ‘꿈 섬’을 찾아 나선 그의 끈질긴 열망이 이후 황영순 서정의 시적 모티브가 된다.
모진 겨울 딛고 봄이면 꿈의 등불로
되살라나는 내 이름은 민들레예요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으리라는 그 소망 간절하여
하느님은 이 못난 나에게도 힘을 주셨어요
세상 어디든 날라 가는 기적을 주셨어요
- 중략-
망망한 시간과 공간을 넘어 바람타고 하늘로
저 언덕 들판으로 있는 힘을 다해 끝까지 날아서 가요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아 뿌리내리라는
나는 이른 봄날의 짧고도 긴 편지예요.
- 「민들레」 일부, 2008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봄날의 짧고도 긴 편지’는 이제 민들레 홀씨로 승화 되어 길고도 긴 기다림의 세월을 하얀 꽃씨가 되어 날고 있다. 발효와 숙성, 곧 자기 정화, 자기 극복의 길이다. (김동수:시인.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