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씨가 되어 날아가는 민들레 편지
꽃씨가 되어 날아가는 민들레 편지
  • 김동수
  • 승인 2016.06.16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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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6.황영순(黃榮順:1949-)

  전북 김제 출생. 원광대 가정과 졸업. 1978년 전북 주부 백일장에서 장원 후 1984년 『월간문학』에서 시 「강가에서」로 등단. 어둡고 암울한 속에서도 희망과 의미의 세계를 지향, 따스한 인간애를 구도 미학으로 담아내면서 시집 『恨 같이 그리움 같이』 외 다수가 있다.

 한 송이
 장미꽃을 받으며
 휘감겨 오는 봄내음을 마시고 있다

 꽃 속엔
 뜻밖의 기별이
 말간 샘물이 찰랑이 고여
 멍멍한 일상을 딩동딩동 두드리고

 바람은
 꿈
 속까지 들락이며
 한 계절을
 생기로운 비밀로 맺히려 한다

 어디서
 음악인 양 흐르는 울음소리
 슬픔인 양 흐르는 아양소리

 누군가
 저 들녘을 건너
 오고 있다.

  - 「바람 부는 날」 전문, 1987

 
  황영순은 기다림의 시인이다. 그에게 ‘한 송이/ 장미꽃’과 ‘뜻밖의 기별’을 안겨줄, ‘말간 샘물’같은 그리하여 ‘멍멍한 일상을 딩동딩동 두드’려 줄 ‘생기로운 비밀’의 ‘봄내음을 마시고’ 싶어 한다. ‘어디서/ 음악인 양 흐르는 울음 소리/ 슬픔인 양 흐르는 아양 소리’가 시인이 처한 상황과 그에 따른 탈출의 열망을 대변하고 있다.

 흔들리네/ 햇바람으로/ 조금씩 조금씩 흔들리네// 날개를, / 하늘을 갖지 못한 아픔/ 더는 견딜 수 없어/ 바람이 되려 하네.
 
 마구 남녘으로 날아가/ 아직 만나지 못한 꿈 섬이/그 곳에 있는가/ 찾아보겠네.// 새로이 만 가지 꿈을 밴/ 봄날 만날 때까지/ 꿈으로 가는 길목을 /지켜 설 작정이네.

  - 「새 봄에」 전문, 1987
 

  그러나 그러한 그의 열망도 ‘날개를,/ ∼갖지 못해’ ‘바람이 되어’ ‘남녘으로 날아가/ 아직 만나지 못한 꿈 섬이/ 그 곳에 있는가/ 찾아보겠’다 한다. ‘생기로운’ ‘봄내음’을 안겨 줄 ‘꿈 섬’을 찾아 나선 그의 끈질긴 열망이 이후 황영순 서정의 시적 모티브가 된다.
 

 모진 겨울 딛고 봄이면 꿈의 등불로
 되살라나는 내 이름은 민들레예요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으리라는 그 소망 간절하여
 하느님은 이 못난 나에게도 힘을 주셨어요
 세상 어디든 날라 가는 기적을 주셨어요

  - 중략-

 망망한 시간과 공간을 넘어 바람타고 하늘로
 저 언덕 들판으로 있는 힘을 다해 끝까지 날아서 가요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아 뿌리내리라는
 나는 이른 봄날의 짧고도 긴 편지예요.

  - 「민들레」 일부, 2008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봄날의 짧고도 긴 편지’는 이제 민들레 홀씨로 승화 되어 길고도 긴 기다림의 세월을 하얀 꽃씨가 되어 날고 있다. 발효와 숙성, 곧 자기 정화, 자기 극복의 길이다. (김동수:시인. 백제예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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