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당 윤명호 화백 작업실 화재
백당 윤명호 화백 작업실 화재
  • 완주=정재근 기자
  • 승인 2016.06.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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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이 없으면 손가락으로 땅에라도 그림을 그려야죠.”

 순수 한국화에 일평생 몸을 바쳐온 백당 윤명호(75) 화백의 작업실인 ‘청우헌’(완주군 상관면 내아마을 소재)이 한순간의 화재로 전소되었다.

 그러나 윤 화백은 자신의 몸이 살아있는 한 그 재능을 사회에 기여할 생각에 자녀에게 붓 한 자루 사 달러며 웃어 보였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내년에 플루티스트인 딸 수연(43)씨와 한국소리문화전당에서 그림과 음악이 어울리는 음상 쇼를 준비하기 위해 그린 완성품 80여점도 전부 화마에 휩쓸렸다.

 한국화의 거목인 백당 선생은 꿈을 잃지 않고 오늘도 잿더미 속을 뒤적거렸다. 다름 아닌 낙관(작가가 글씨나 그림에 자신의 이름이나 아호(雅號)를 새긴 도장)이라도 건질까 해서다.

 안타까운 소식에 마을주민들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그동안 완주 상관 내아마을로 귀촌해 완주군 역점사업인 마을공동체 사업과 참살기좋은마을사업 등에 기여하고 마을벽화 동양화 재능기부 등 좋은 아이디어 제공과 함께 마을을 한국화로 물들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2013년 완주군민의 날 문화장도 수상했다.

 

 화재의 원인은 지난 12일 오후 5시께 화목보일러에 잡동사니를 넣고 태우는 과정에서 잠금장치를 소홀히 한 것이 화근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100㎡ 의 청우헌은 순식간에 전소돼 한국화 완성작품 80여점이 온데간데없고 검게 그을린 앙상한 액자만 덩그러니 흩어져 있었다.

 다행히도 혼자 지내면서 친구처럼 지내온 닭과 원앙새, 개 등 살아있는 생물은 전혀 잃지 않았다.

 딸 수연씨는 하루라도 아버지의 작업실을 다시 건축해 주고 싶은 심정에 이리저리 도움의 손길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동안 아버지가 모아 놓은 재산이 없어 복구작업은커녕 잿더미마저 치울 형편이 못돼 손을 놓고 있다.

 수연씨는 “2013년에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음상 쇼를 개최했을 때 관객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 내년도 행사준비를 위해 온 정성과 함께 빚까지 얻어 준비중이었다”며 눈시울을 불켰다.

 평소 백당의 숙원은 그림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데 봉사하는 것을 중시해 왔다.

 또 하나의 소원은 이곳 청우헌에 작은 전시실을 만들어 많은 사람이 찾아와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을 입버릇처럼 원했다.

 실제로 딸과 함께 이곳 청우헌에서 몇차례에 걸쳐 소그룹 작은음악회도 개최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는 것.

 백당은 국전 6회 입선에 대한민국미술대전 3회 입선, 전라예술제 1회 장려상 등 다수 입상했다. 뿐만 아니라 전북도전 초대작가와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 전남대 예술대학 강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자문위원으로 맡고 있다.

 “나는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텐트라도 치고 붓을 잡으려 합니다.”

 백당은 한두 평 남짓 타지 않는 흙집에서 오늘도 하늘을 우러러보며 새우잠이 든다.

  완주=정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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