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막말의 매력
트럼프 막말의 매력
  • 김종일
  • 승인 2016.06.07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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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11월에 있을 미국 대통령선거 공화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의 막말이 연일 구설수다. ‘트럼프’하면 ‘막말’이 연상될 정도이며, 막말이 그를 향한 지지와 비난의 근원지라고 해도 맞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인종차별이나 여성폄하 등등의 발언들을 쏟아내는 그가 황당하게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됐다. 국내 언론들은 “설마 이런 사람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겠느냐”는 듯 재미 반 우려 반 정도의 시각으로 보도하고 있는 듯하다. 트럼프보다 참신성은 떨어지지만, 기존의 안정감 있는 세계 질서와 미국의 역할에 익숙한 힐러리의 당선을 강력히 희망하며 사실상 기정사실화하려는 보도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매우 높게 예측하고 있다.

 살다 보면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 천양지차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철천지원수가 될 수도 있듯이 말이다. 와튼 스쿨 출신에다가 부동산 재벌 그리고 20여 년 전 출판한 ‘거래의 기술’이라는 베스트셀러 작가인 트럼프가 그런 상식을 모를 리 없으련만, 그의 발언들은 거침이 없다. 말하는 자기 자신의 체면이나 듣는 사람의 인격이나 감정 따위는 안중에 없다. 거의 여과 없이 하고 싶은 말들을 토해 낸다. 막말 이상으로 그의 사고방식과 행동도 지금까지 보아온 다른 정치인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아무리 맞는 말이래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아마 트럼프의 말을 처음들은 사람 대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필자도 그랬다. 그런데 듣고 보니 맞는 말이 많다. 다만, 아주 막역한 친구들하고 술 한 잔 하면서 사석에서나 떠들 수 있는 소리지, 공식석상에서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도 맞다. 그런데 여러 번 듣다 보니 일면 통쾌하다. 따지고 보면 일상생활에서 격의 없이 지인들과 흔히 나누는 얘기를 굳이 자리를 봐가며 해야 할 이유도 딱히 없다. 굳이 죄라면 솔직한 게 죄겠다. 누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털어놓는 트럼프를 통해 대리배설의 만족감을 느낀다. 속이 다 후련하다. 그가 점점 좋아진다. 사실 그랬어야 하는 것 아닌가. 기존의 형식과 가식으로 치장된 정치인들의 발언들이 오히려 잘못된 관행이고 바로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트럼프야말로 그간의 잘못된 전철을 바로 잡고 새로운 정치문화를 정립할 진정한 영웅일 수 있겠다. 이와 같은 일련의 생각의 변화가 기성 정치권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다수 계층의 미국인들로 하여금 트럼프를 공화당 후보로 옹립게 한 이유로 짐작해 본다. 처음 그가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을 때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코웃음 친 것이 사실이었지만, 현재 트럼프의 성공은 기존 정계에 대한 유권자들 불만의 표출이 반영된 것임은 틀림없다.

 우리가 한미관계와 관련해서 관심을 두는 것은 그의 주한미군철수와 우리나라와 일본에 대한 핵개발 허용 가능성과 관련된 발언이다. 다른 후보 같으면 “미국의 동북아 해외주둔미군과 핵확산방지 정책에 대대적인 재검토 또는 수정이 있을 수 있다”는 정도의 정치적인 발언에 그쳤을 법한데, 트럼프는 마당쇠답게 못을 박아버렸다. 사실 이 말이나 저 말이나 비슷한 말이긴 하지만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의 대통령이 여과 없이 의중을 노출한다면 세계 각 지역의 갈등이 커질 수 있음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기우는 아닐 것이며, 이로 인해 트럼프에 대한 비난과 반대가 거센 것도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여하튼 트럼프는 재미있고 남다른 매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미국 대선을 관전하는 재미를 배가시켜 주는 것은 사실이다. 전통적 미국의 가치관에 충실한 힐러리가 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변화와 도전의 돌풍을 몰고 올 트럼프가 될 것인지, 올겨울 미국 대선의 결과는 사뭇 흥미롭다. 하지만, 설사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고 하더라도, 지금 후보로서 언급한 내용들을 실천에 옮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필자는 일면 트럼프가 당선되기를 희망해 보기도 한다. 앞으로 진행될 변화들이 흥미진진할뿐더러 우리나라의 긍정적 변화에도 일조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증세 없이 이것도 저것도 공짜로 퍼주겠다는 둥 듣기 좋은 거짓말에만 익숙한 국내 정치인들 그리고 토착 지역구도에 길들어 제 몫 챙기기에만 혈안이 된 우리 지역 지도자들이 제발 개과천선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지역 지도자들 스스로 자기 자신이 바로 우리 지역 낙후의 원흉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예전엔 숨 쉬는 것 빼고 거짓말이라고 했었는데, 요즘엔 숨 쉬는 것도 거짓말이란다. 정치 문화가 그런 탓인지 우리네 일상의 모습도 과거와 많이 달라진 느낌이다. 언젠가 정직과 솔직함은 사라지고, 하기 좋고 듣기는 좋지만 하나 마나 한 대화들, 다시 말해 표리부동과 암중모색이 우리 일상의 모습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오늘 필자의 쓰나 마나 한 글도 비슷한 맥락이다.

 김종일<전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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