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기엔 아쉬운 흔적들
버리기엔 아쉬운 흔적들
  • 박종완
  • 승인 2016.06.06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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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년 전부터 아침저녁으로 볼멘소리가 자꾸 난다. 집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애들도 덩달아 야단이다. 이사 간 지가 십수 년이 지나다 보니 집안 물건들이 정상의 상태를 넘어 후줄그레한 모습으로 주인과 한판 하자는 양으로 달려들어 저리 야단들인가 보다.

 왜 아니겠는가, 새집으로 단장하고 좋은 것을 구입해서 알콩달콩 살면 좋겠지만 어디 세상사가 그리 쉽게 마음먹는 대로 되질 않아서 문제다.

 새집으로 고쳐볼 양으로 이것저것 챙기다 보면 같은 집을 고치는데도 공사기간과 비용이 업체마다 천차만별이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설계와 시공이 이루어지는지도 의문이고 아무리 발품을 팔더라도 속 시원한 답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필자도 깜냥에는 건설 회사를 경영하며 아파트를 짓는다고 쉽게 봤지만, 막상 시작하려 하니 이런저런 일이 걸려서 미루고 미루다 결국 올봄엔 무작정 시작을 했었다.

 임시방편으로 마련한 원룸으로 갈 짐과 이삿집보관소로 갈 짐을 제외하고는 버려야 할 물건들을 정리하다 보니 버리기엔 아쉬운 흔적들과의 교감은 지금껏 살면서 느끼지 못한 소중한 재충전의 시간이었다.

 짐을 정리하다 보니 켜켜이 쌓인 흔적들이 오랜 시간 속에 가끔 이성보다 감성을 앞세우고 여러 기억들은 그리움으로 물들어 멍하니 그때 일들을 회상하게 해 작은 미소와 함께 행복에 젖어들었다.

 애들 방을 정리하다 발견한 옛날 성적표, 일기장, 어릴 적 잘하겠다며 맞춤법까지 틀려가며 섰던 반성문을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다.

 신발장, 옷장들도 그때 그때마다 구매시의 흔적들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기억 속에 남아있어 여간 정을 떼기가 아쉬워 몸살을 한다.

 철따라 기능적으로 입던 옷들과 선수도 아닌데 천년만년 쓸 것처럼 구입했었던 스키를 버리기가 아까워 만지작만지작 하는데 옆에서 요즘은 더 좋은 것들이 많고 렌털을 하면 되는데 뭘 그러냐고 핀잔을 한다.

 책장을 정리하다 보니 오래된 교재들과 앞으로도 읽지 않을 책들도 있고 사진첩을 정리하는 데 어린 시절 황금들판에 누렇게 익은 벼를 베었는데 어머니께서 새참으로 준비해오신 열무국수를 해오셨는데 먹기 전에 형과 함께 찍은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보니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흔적에 아쉬움이 깊어져 눈시울이 붉어진다.

 결혼식 방명록과 함께 색 바랜 축의금봉투를 보면서 감회가 새로워지고 약간에 얼룩이 묻어 있는 성혼선언문을 바라보니 대학 은사님께서 주례 말씀이 길어져 그 전날 우인들과 함께 마신 술이 과해서 깜빡 졸았는데, 신부의 재치로 놀라 정신 차렸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잊고 있었던 애틋한 기억들이 떠오르며 세월의 덧없음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흔적들을 꼭 버려야 할까’ 생각이 앞선다.

 필자도 잘 버리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잘 구입하는 것도 아니다 보니 케케묵은 것들을 버리지 않더라도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는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맞이했었다.

 집을 정리하면서 버려야 할 것과 버리지 않아도 되는 특별한 묘책은 없어 보인다.

 요즘 버리는 연습이 대세다. 멍 때리기 대회를 개최할 정도이고 서점가에는 버리는 삶을 예찬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다.

 아쉬운 흔적들을 지우는 데 명약은 없는 것 같다. 가슴깊이 추억으로 간직하고 버리는 게 최선이 아닐까 싶다. 이번 아파트 리모델링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었다. 생활하면서 기능적으로 필요한 물건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넘쳐나는 물건 속에서 새것을 쫓는데만 열중하지 않았어나 깊이 반성을 해본다.

 최고의 인테리어는 버리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인테리어에 너무 욕심을 내다보면 물건을 자꾸 사들이고 그러다 보면 또 물건들에 치우쳐 사람이 얹혀사는 모양새가 되기 쉽다.

 사소한 물건이라도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지를 마음속에 정해야 할 것이다.

 그림에도 여백이 있듯이 우리가 사는 곳에도 물건으로 가득 채워진 공간이 아닌 가족의 사랑과 행복을 담는 작은 여백이라도 만들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박종완<계성 이지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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