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구워 먹는 날 풍경
보리 구워 먹는 날 풍경
  • 박성욱
  • 승인 2016.06.0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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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거 먹는 거예요?)

몇 일전 바람이 세게 불었다. 봄 날씨 답지 않게 제법 센 바람이 불었다. 학교 본관 건물과 운동장 사이 작은 텃밭에 심어둔 보리들이 쓰러졌다. 추운 겨울 삭풍도 종잡을 수 없는 샛바람도 이겨낸 녀석들인데 키가 크고 머리가 무거워지더니 견디기 힘들어서 푹 쓰러졌나 보다. 까슬까슬 올라온 보리 삭을 만지작 거리며 귀염둥이 사랑이가 묻는다.

“선생님 이거 먹는 거예요?”

“응 먹는 거야. 이거 보리야!”

“가위 바위 보리 보리 개미똥구멍. 할 때 보리요?”

순간 웃음이 나온다. 가위 바위 보를 할 때 그렇게도 한다.

“그래. 밥 할 때 넣어먹는 보리. 그리고 이거 구워먹기도 해.”

“무슨 맛이예요. 우리도 구워먹어요?”

“그래.”

일단 말을 그렇게 해 놓고 언제라고는 말하기 어려웠다. 그 언제가 정확히 언제인지 나도 모르니까 단지 가까이 왔을 뿐이었다.

(일을 크게 벌이다.)

교장 선생님께서 중간 놀이 시간에 아이들과 보리구워 먹기를 하자고 하셨다. 부지런한 학교 살림꾼 김살림 선생님은 벌써 학교 앞 산에서 잔솔가지 나무 한 짐을 해 오셨다. 으악 말이 그렇지 전교생 데리고 보리 구워먹기를 한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다. 한 반은 모르겠지만 우리 어릴 적에는 보리 수확 마치고 어른들이 논에 불질러 놓으면 보리 이삭도 구워먹고 개구리 뒷다리도 구워먹어 보았지만 지금 아이들에게는 첫 경험이다. 더군다나 활활 타는 불에 보리를 굽는다는 것은 혹시 아이들 화상을 입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아무튼지 여러 가지를 걱정하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던 일을 아이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추억을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은 인생을 함께하면서 연결된다. 이 연결이 관계를 따뜻하게 엮어준다. 잔 솔 가지에 불이 붙었다.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 손에 한 움큼씩 잘 영근 보릿대를 들려 있었다. 서로 먼저 하려다 불이 뜨겁고 연기가 매워서 뒤로 물러났다. 불이 조금 사그라 들고 바람이 연기를 요리조리 몰고 다니자 아이들도 매운 연기를 피해 요리조리 몰려다니면서 보리를 구웠다. ‘딱딱’ 보리 익는 소리. 까맣게 익은 이삭을 손에 놓고 비비면서 ‘후후’ 불면서 까부른다.

“선생님, 말랑말랑 젤리 같기도 하고 바삭바삭 누룽지 같아요. 맛있어요!”

아이들이 맛있어 했다. 맛이라는 것이 혀끝에서 느껴지는 것도 있지만 재미에서 느껴지는 맛이 더 있다. 한 녀석이 자기 키 만한 대나무 끝 빈 통에 보리를 넣고 구었다. 이제는 뜨거운 불도 매운 연기도 무섭지 않다. 순간 긴 대나무 장대가 모닥불을 점령했다. 아이들 손이며 얼굴이며 옷이며 점점 새까맣게 변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허연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다.

(꽃 거지들 패션쇼)

“선생님 제 좀 봐요!”

맙소사 식은 재로 얼굴에 분칠을 했다. 그리고 버찌 열매로 얼굴에 연지 곤지 입술까지 빨갛게 칠했다. 거기에다 귀에 꽃까지 꽂았으니 그야말로 꽃 거지다. 그렇데 이것이 중독성이 있어서 이 녀석 저 녀석 함께 합동 패션쇼를 벌였다. 정말이지 끝내주게 웃겼다. 까만 재가 자연산 숯 팩이고 버찌는 천연 색조 화장품이라며 저리들 재미있게 놀고 있다니 우리들 예상과는 달리 아이들은 너무도 재미있게 즐기고 있었다.

요즘 세상이 위험하다고들 한다. 그래서 안전을 중요시 여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자. 무엇이 진정한 안전인가? 요즘 아이들 중에서 칼로 연필 한 자루 제대로 깎을 줄 아는 아이가 몇 명이나 될까? 아궁이 모닥불 불 조절할 수 있는 아이는 또 몇 명이나 될까? 아이들은 우리가 말로 전해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몸으로 겪으면서 배운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으로 연결되었고 서로의 관계는 좀 더 행복하게 엮여 갔다.

 

박성욱 구이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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