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관심은 우주의 속삭임
나의 관심은 우주의 속삭임
  • 김동수
  • 승인 2016.06.02 14: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5.조미애(曺米愛:1958- )  

   전남 진도 출생, 전북대 물리교육과와 동 교육대학원졸업. 교육학 박사. 1988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 전북도내 중학교 교사를 거쳐 전북문협 부회장과 2001년 새천년한국문인상 수상. 시집 『풀대님으로 오신 당신』 외 2권과 수필집이 있다.

‘나의 관심은 자연의 만물과 그 속에 숨어 있는 우주의 속삭임이다. 할 수만 있다면 억겁의 시간 속에서, 채 일백년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며 만들어내는 목소리도 담고 싶다. ∼쓰고 싶은 이야기, 쓸 수 없었던 이야기, 미처 시로 담아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모두 풀어내고 싶다’(제2시집 『흔들리는 침묵』에서)

만경평야 벌판에서
가을이 떠난다.
한결 무디어진 햇살

살아있던 초목들
점차 땅의 색을 닮아간다

이 논 저 논에서
채 사르지 못하여 남겨진 짚더미와
여기 저기 흘리고 간 지푸라기 잔해들
신음처럼 피어오르는 悔恨

매캐한 저녁 안개 속을
까치 두 마리
날아간다.

- 「풍경. 3」 전문

‘자연과 만물 속에는 ‘영원’과 ‘순간’이 병존하고, ‘항상’과 ‘변화’가 함께 한다. 그것이 ‘우주의 속삭임’이다. 불교적으로 이야기하면 ‘색’과 ‘공’이 공존한다는 의미가 된다. 끊임없이 변해가는 삼라만상의 현상 속에서도 자연현상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존속되고 있다는 도(道)에 대한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만경 평야 벌판’이라는 정(靜)의 세계와 ‘가을이 떠나가는’ 동(動)의 세계가 ‘있음과 없음’, ‘보임과 사라짐’의 양변에서, 그것들과 하나가 되지 못한 존재의 불안을 감지하고 있다. ‘다분히 이원론적인 세상에서 불연속한 현상들은 모두가 나의 詩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비로소 내 침묵은 심하게 흔들린다.(제 1시집 『풀대님으로 오신 당신』에서)는 그의 말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불연속이 되어/ 드러나지 않는 구간에/ 묻혀버릴 시간이 두렵다/ 선과 선을 잇는/ 작고 좁은 공간/ 안과 밖을 나누는/ 가는 선 위에 남아/∼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침몰하는/ 별이 될까 두렵다’(「시간」일부)도 같은 맥락이다.

흙으로 빚어진 盆 안에
동설란의 새 순과
이름 모를 어린 싹 하나가
싸우고 있다.

긴 겨울 튼실한 알뿌리 덕에
매운 추위 다 이겨낸 생명이라서
힘이라면 누구와도 견줄만하나
이름조차 알 수 없는 풀씨여서
만만한 것은 아니다.
아직 이른 봄날 오후
길게 들어온 햇살을
서로 탐내고 가두어 가면서
좁은 화분 안에 뿌리를 뻗어
당을 훔쳐 넓히는
筍들의 전쟁

- 「筍들의 전쟁」 전문

그림을 그리듯 세상의 풍경을 스케치하면서 ‘이원론적’이고 ‘불연속한 것’들이 그 속에서 대칭구도를 이루고 있다. 앞의 시에서의 ‘남아 있음’과 ‘사라짐’이 그것이고, 이 시에서의 ‘동설란’과 ‘풀씨’와의 병치도 그것이다. 이것들이 어떻게 대립하고 상생하면서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 갈 것인가? 여기에 조미애 시의 자연과 생명 그리고 생의 과제가 남아 있다. (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 명예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