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과 조영남
한강과 조영남
  • 이동희
  • 승인 2016.05.3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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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3대 문학상에 든다는 <맨부커인터네셔널상> 수상작『채식주의자』를 통독했다. 독후감을 말하기 전에 이번 수상을 계기로 두 가지 인상적인 보도가 마음에 남는다.

 하나는 한강 작가의 수상 소감이었다. “제가 상을 받는다고 달라지는 게 없어요. 빨리 방에 숨어 글을 쓰고 싶어요. 그리고 제 작품만이 아니라 동료 선후배 작가들의 좋은 작품을 많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필자는 이 발언에서 작가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대외적인 영광이 작가의 사람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 작가의 본분은 글을 쓰는 데 있다는 것, 그리고 상을 받은 내 작품만이 아니라 더 많은 작가들에게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었다. 쉽게 나온 발설 같지만, 그 안에는 작가 정신이 오롯이 담겼다고 보았다.

 또 하나는 미국 주간지『뉴요커』는 ‘정부의 강한 지원으로 한국이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기획기사에서 “정작 문학 독서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노벨상 같은 대외적인 성과에만 목매는 한국 풍토”를 꼬집었다. 지난번 통계청의 ‘한국인의 생활시간 변화상’이라는 조사에서도 드러났지만, 한국의 독서량은 OECD 국가 중에서 꼴찌로 연간 평균 독서량이 0.7권, 2014년 하루 독서시간이 단 6분에 그치고 있다.

 이런 사실들과 함께『채식주의자』는 서사문학이 갖추어야 할 요소들을 고루 갖추어, 책 읽는 눈길을 뗄 수 없게 하는 힘이 있었다. 중편 3부작을 하나의 장편소설로 전환하는 구성 요소 간의 필연성, 작품 내에서 통일성 있는 언행으로 형성해 낸 캐릭터의 독창성이 독자를 사로잡을 만했다. 이런 독서 끝에 남는 것은 따로 있었다.

 허구로 조합해 낸 작품 속의 세계와 인물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남긴 질문은 다음 두 가지로 보였다.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은 과연 존엄한 존재인가?’ 작가는 후속 작에서『채식주의자』에서 던진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내놓겠다고 하였지만, 필자가 보기에 그 대답은 세상이 그렇듯이, 사람들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있듯이 독자들이 감당해야 할 삶의 몫일 수밖에 없다. 작가가 제시하는 대답이 아니라, 독자가 선택해야 할 삶이라는 것이다. 문학작품의 독서는 효용성에 값하는 윤리적 해답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읽는 이의 가슴에 던져지는 감동의 질문이기 때문이다.

 마침 우리 언론계는 조영남 씨의 회화작품에 대한 ‘관행’이 화제가 되고 있다. 색깔 있는 가수로서, 화투를 소재로 화단과 세속에 불러일으킨 센세이셔널 한 화가로서, 그리고 심지어 시 해설집이란 꼬리표를 달고 세상에 나온『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를 통해서 천재성을 지닌 동시대의 재주꾼[엔터테이너]로서, 필자도 조영남 씨를 선호했다.

 그러나 이번의 시비는 그런 천재성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사건이 되었다. 시시비비를 논하기 전에 ‘작가정신’ 또는 세속의 인기를 먹고사는 대중연예인으로서 일말의 ‘진정성’에 회의를 품게 하였다. 이것은 조수의 조력을 받아 작품을 제작하는 미술계의 관행을 떠나서, 앞에서 언급했던 한강의 ‘작가장신’에서 찾을 수 있는 일말의 진정성을 조영남 씨에게선 찾을 수 없다는데서. 대중의 실망과 질책이 모이는 것으로 보인다.

 “오 나! 오 인생! 수없이 반복되는 이 질문들.// 진실하지 않은 자들의 끝없는 행렬에 대해, 바보들로 가득한 도시들에 대해,/ 영원히 스스로를 책망하는 나 자신에 대해,(나보다 더 바보 같고 믿음 없는 자가 있을까?)/ 헛되이 빛을 갈망하는 눈들에 대해, 비천한 것들에 대해, 늘 재개되는 투쟁에 대해,/ 형편없는 결말들에, 지겹도록 느리게 걷는 내 주위의 졸렬한 군중에 대해,/ 공허하고 쓸모없는 남은 인생에 대해, 내가 엮여 있는 그 남은 시간들에 대해,/ 오 나! 반복되는 너무 슬픈 질문-이런 세상에서 뭐가 의미 있단 말인가? 오 나! 오 인생!// 그 답은,/ 네가 여기 있다는 것-삶이 존재하고 네가 존재한다는 것,/ 강렬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월트 휘트먼「오 나! 오 인생!」전문)

 세계적인 문학상 ‘수상’에만 관심을 두는 우리의 대중성이 정작 문학작품 읽기를 외면하듯이, 그런 대중성이 작가정신을 의심받는 대중 스타를 양산하는 풍토를 만든 것은 아닌지…. [소설-회화]작품 이전에 인간존재의 의미와 그 존엄성에 대한 성찰이 없는, 그리하여 ‘진실과 미학’으로 충만한 올곧은 시정신이 결핍된, 영혼 없는 대중스타의 범람 속에서 우리는 좌표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 사건을 통해서 성찰해 본다.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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